공 준 2011.08.27 09:59


이행준


몽환적 사운드와 영사기의 필름 흘러가는 소리가 일정 정도 조응을 이루기도 한다. 사람들이 발자국을 남기며 돌아다니고, 공간의 반향, 곧 공간을 채우는‧건드리는 사운드, 공간과 결부된 공간이 있음을 알려주는 사운드의 존재, 하나의 악구를 형성하는 멜로디의 반복, 그렇지만 이 네 개의 영사기가 돌아가며 저마다 지정된 순서에 의해 순차적으로 소리를 내는 메커니즘은 기계들이 병치되어 자동적으로 맞아떨어지며 느껴지는, 곧 사운드를 멜로디로 인식하는 기제를 통한 것으로, 이것들을 하나의 기계 메커니즘으로 치환해 생각해 보는 게 가능하게 되어 있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또한 텅 빈 공간에 사운드의 영사기의 빛과 함께 점멸시키고 나서 영사기에서 흘러나오는 필름만을 공허하게 바라보고 있는 데서 이것이 자체적 동력에 의한 생명을 얻는다는 느낌으로 격상되며 새롭게 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멜로디의 반복으로 인한 일종의 몽환적인 분위기의 조성은 이어 그 영사기만을 남겨 놓았을 때 정보의 불투명성으로 인해 흘러가는 영사 필름에 그리고 그 아날로그적 장치에 대한 일종의 추억의 상징과 함께 여러 상념들을 흘러가며 그것을 채우게 한다.

사람들이 앉고 영사기를 잔상으로 스크린에 비추던 또 다른 영사기들은 초록빛과 붉은 빛 두 개로 그 영상 앞의 영사기를 화면에 드러낸다. 여기에 그 영상에 보이게 되는, 영사기 뒤에 사람들이 의자에 한 명씩 앉기 시작하자 머리는 각자 다른 층위, 곧 원근법에 따른, 또 엇갈려 앉은 까닭에 다른 층위를 점하고, 영사기는 초록과 붉음으로 여기 저기 위치를 획정 지은 사람들을 오가며 번쩍이기 시작하고, 이로써 존재와 사라짐은 매우 단속적으로 실천된다.

단순한 삐 음에 맞춰 오히려 존재의 출현, 그리고 사라졌던 존재의 재출현은 빠른 속도로 화면을 뒤덮으며 각기 다른 층위의 레이어들을 생산하게 되고 이로써 하나의 악구-시각적 악구를 대신 상정하게 된다. 이제 각각의 사람들의 층위는 하나로 뭉쳐 하나의 레이어로 합쳐진 가운데 전체적으로 초록색 감도가 화면을 뒤덮고 천둥소리 같은 소리, 그리고 사람들의 웃음소리 등 채집된 소리들이 튀어나오며 레이어들로서 존재를 어떤 존재의 이야기로 결부시킬 수 있는 약간의 가능성을 띠는 것도 같다.

몇 개의 네모난 레이어로 분할되어 있는 듯한 큰 화면은 실제 세 개의 같은 크기의 레이어로 분할되면서 좌우로 레이어가 갈려 나오면서 어둠으로 뒤덮이게 된다. 일종의 삐 거리는 음은 뇌와 주파수를 맞추는 작업으로도 느껴지면서 그것이 변주의 양상을 가져올 것임을 예고하는 듯했지만, 오히려 시각의 미세한 조정으로 차이와 긴 호흡의 기다림만을 가져갔던 것 같다.

최준용


사운드-진동, 마치 고래와 같이 그는 눈을 감고 앰프를 밀어 내며 바닥을 더듬어 갔다. 사운드는 앰프와 연결된 기타에서 불규칙한, 악구를 채 형성하지 못 한 채 그것과 밀착된 작은 공간에의 날카롭고 예리하고 예민한 사운드의 하울링을 형성했고, 앰프는 하울링의 공간의 특정한 점을 지정하는 것에서 확장되어 하나의 존재 감각으로 다가왔고, 이는 사운드의 꺾임과 매질을 통한 또는 다른 사운드의 확장됨에 부딪쳐 공간을 유동하며 다가오기도 했다.

최준용이 어느 정도 끌고 자신은 눈을 가림으로써 어둠 속에서의 움직임을 구체화시키고 있을 때 장님으로서 더듬어가며 우연적인 공간의 형성과 오브제와의 마주침들로 사운드를 형성하는 것에서 어느새 불이 꺼짐으로써 같은 조건을 형성하게 됐고, 바다‧심연의 시각이 아닌 촉각 내지 후각으로 모든 것을 더듬어 가는 고래의 감각을 체현하게 되는 듯했다.

하울링 또 이차 공명의 자장은 그 자체로 하나의 연주이자 독자적인 단위를 이루었다. 오직 한 번밖에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이것은 끊임없이 퍼져 나가며 공간을 건드리고 감각을 조여 오면서 실행되고 이것이 끝날 때 즈음 아직 공명의 잔향이 남아 있을 때 다른 공간의 층위를 더듬어오며 하울링이 확장되어 가는 것에 이어 복잡성과 엔트로피적 흐름을 볼 수 있다.

한편 앰프는 떨판으로서 그 자체의 예기치 않는 동력의 자장을 생성하는데, 이것과 하나가 되어 움직이는 최준용은 그래서 몸으로부터 시작된 공간을 파고드는 사운드 떨판-몸의 큰 공명 장치로서의 존재적 유랑‧유영을 지속하는, 곧 그 생명체 자체를 계속 느끼게 만드는 그런 환경의 한 가운데 관객을 있게 만드는 것과 같다.

나중에 불을 켜면서 이 환경 자체가 하나가 된 바다 속에 이는 마치 햇빛이 바다 속을 뚫고 들어오는 것만 같다. 어둠을 트이게 하는 빛의 존재, 그럼에도 눈 먼 고래의 여정은 계속되고, 공간을 환기하는 공간의 더듬음을, 공간을 더듬는 존재로 다시 돌리게 만드는 장치이기도 했다.

타카히로 카와구치


봉지를 부풀리며 또 조금 가라앉으며 바람을 내는 선풍기 소리의 사운드, 오브제들과의 조응, 째깍 또는 귀뚜라미 같은 작은 생명체들이 우는 소리.

조명이 비치는 작은 지점에서 울리는 소리가 일종의 기본 리듬을 형성한다면 여기에 온갖 오브제들을 그 근처로 배치하는 일련의 노동이 일어나난다.

마치 선풍기 소리의 유사 계열의 확장으로 보이는 모터 동력을 안고 실재 마찰을 일으키는 봉지의 바깥으로 출현하는 일련의 확장된 음색은 꽤 거세지고 봉지에 가로 막혀서 고안된 선풍기 틀 안에서 소음 없이 움직이지 못 한다.
노이즈의 발생이 불규칙적이고 우연적이며 이는 불편하기보다 꽤 색다른 음색에 불규칙한 리듬의 다양한 변주를 가능케 하는 독자적인 동력으로 작용한다.

공명을 일으켜 순간 외부의 소리를 못 듣게 만드는 먹먹함, 그리고 다시 바깥으로 퍼져나가는 소리가 신체와 밀접한 연관을 맺는 순간을 만든다.

반복되는 하울링은 오히려 규칙적으로 느껴지는데 이것이 공명을 일으키기보다 어떤 단선적인 흐름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빛이 침투하는데 레이저 빛이 청각의 임계 밀도를 깨고 시각으로 나타나는 것 같고 또는 우연히 나타나는 것 같다. 이러한 시각은 청각의 잔향을 가지지 않아 공간의 정보가 오히려 감각적으로는 입체적이지 않다. 다만 청각이 갖는 공간 정보가 시각의 다양한 지점으로 빚어진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 『고래, 시간의 잠수자』전단 [출처=국립극단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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