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준 2011.08.25 11:23


그녀는 몸을 보여주거나 움직임을 드러낸다기보다 오히려 자신의 움직임을 통해 자신을 숨기고, 또 의도하지 않는 몸의 일부-아니 의도했지만 의식하지 않는 신체까지 비춰내는 것 같다.

곧 그녀는 몸을 내어주는 것이다.

춤을 추는 게 아니라 움직임으로써 움직임을 통해 의식치 못 했던 흔적들을 끄집어내는, 그래서 마치 사회의 한 흔적, 리서치가 아닌 그 흔적들이 재단할 수 없이 그저 흘러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몸에 결부된 맥락은 의외로 광범위하고 예측하기 힘들다.

자신을 보이면서 스스로를 부끄러워하기, 자신에게 숨으면서 몇 겹의 층위를 쓰면서 드러내고 다시 자신의 속살을 드러낸다.

스프레이를 자신에게 뿌리며 신체를 만지고 또 정신병이 걸린 듯 무언가를 부정하듯 빠져 나가듯 어루만지듯 신체 결을 따라 손을 터는 식의 움직임들이 이어지는데, 이 뿌림의 행위는 소독한다는 결벽증에 한 부분으로, 정신이 강박적인 상태, 자가 검열의 징후들로도 보인다.

이러한 행위들은 목소리와도 연관되는데 자신을 내어주는 것은 한편으로 자신에게 그만한 집중을 잘 유도하는 것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몇 번의 영상이 무대에 접속하고, 무대 위에 퍼포먼스를 끊고 또 퍼포먼스의 연장선상에서 출현한다. 영상의 소리가 소음을 형성하고, 그녀가 관객 앞으로 한층 더 다가왔을 때 재잘거리는 소음들은 주위를 산만하게 하다가 문득 멈춤으로써 정적 상태에서 그녀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집중하는 그녀를 보게 한다.


움직임을 펼쳐내며 이동하거나 시간의 흐름을 타는 것과는 다른 하나의 정박된, 또 계속 앞으로 돌아가는, 나아가지 못 하는 정신적 사태는 마치 연극과 같은, 연기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듯한데, 실은 의식의 어느 한 주파수를 맞추어 놓은 것은 있지만, 몸에서 누출되는 증거들은 의도적이지 않은, 묻어 있는 흔적과 같은 것들로 개인적 맥락을 띠지 않는다. 그 주파수란 그 맥락을 잇기 위한 최소한의 의식 자세 같은 것일 수도 있다.

한편 영상으로 들어간 그녀는 숲속에서 비슷한 움직임으로 세상을 엮어 나가고, 세상을 몸으로 몸과 함께 출현시키는데 그녀를 배경으로 그녀의 동료들이 그녀 춤을 보고 이야기하는 얼굴 없는 등장도 있지만, 자동차가 그녀 옆을 매섭게 지나가고 남아 있는 그녀 모습은 그러한 주변의 환경이 그녀 몸에 덧입혀짐을 드러내는 장치처럼 드러난다.

그녀가 스스로에게 가해지는 방역 작업(이중적 의미를 띤다. 정화 : 이 방역 소독약이 계속 나와 마치 비에 젖은 듯한 느낌을 준다. 또한 사회 내 청소)에서 자신을 어느 좁은 공간에서 맡기는 영상 이후 그녀는 방언을 하듯 뭔가 알아듣기 힘든, 알아듣기 힘들기보다 문장과 구문을 이루지 않는 혼잣말들을 뱉고 바깥으로 나가 버린다.


그녀는 방역 작업과 일체를 이루며 국립극장을 한 번 돈다. 마치 어린 시절 소독차를 따라가듯 발랄한 정서로 해결되지 않은 문맥들을 참여(사실 참여가 아닌 구경, 그렇지만 따라다님으로써 일정 부분 의도치 않게 참여하게 되는, 곧 같이 방역 작업하는 과정을 겪는)로 키를 전환한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의 몸을 내어준다. 어떤 환경 속에 사회가 이미 복제하고 되풀이하고 있었던 어느 한 환경 또 시스템에.

그것이 무엇인지, 어떠한 시대인지, 현재에 유효한지 등의 맥락은 지정하지 않은 채.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 『고래, 시간의 잠수자』전단 [출처=국립극단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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