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준 2011.08.22 03:14


 


잡다하게 섞인 에세이들, 생각의 편린들, 정교하게 주어졌던 순간들의 모음들, 이것들의 잡다한 편집, 그리고 그 중앙의 구멍을 뚫어 텍스트의 과감 없이 삭제한 텍스트 백 권이 관객의 앞에 무대를 들어서는 문에 주어지고, 이는 선택이 아닌 붙잡는 것 자신의 것으로 전유하는 것이다.

아니 이 안에 들어감으로써, 퍼포먼스의 입구에 들어간 것은 참여의 의무성 같은 게 부여된다. 텍스트는 흩날리지만, 이는 퍼포머의 주어진 지위에 귀속되는 것이 아닌 우리에게 직접 참여의 빈틈을 만들고 그 에너지를 우리에게 돌리는 것이어서, 우리는 참여의 순간을 기다려야 하는 입장에 처하게 된다.

그 안에서 퍼포머가 된 사람들은 우리와 같았지만 다른 지위를 획득했고 또 적당히 상기된 목소리와 신체로 이 안에 침잠해 있지만, 이는 그 자신을 그도 생각지 못 하게 끌어내는 격상된 힘을 부여하는 것이기에 관객들도 그 에너지에 동참하게 된다. 이 상기된 에너지가 자유를 뺏는 것이라면 그렇다. 그래서 언어의 리듬을 눈치 채기 전에 그 안에 질려버리고 마는 것만이 아닌, 그 격상된 에너지의 파도가 어디서 유래하는지도 생각하기 전에 거기서 참여의 틈을 찾고 있다.

사실 리듬은 대위법적으로 다른 사람의 낭독에 자신의 목소리를 충돌시키고 접합시킴으로써 가능해지는데, 사실 그 격상된 에너지의 흐름에 자기도 침몰되고, 어떤 흐름에 무의식적으로 동참하고 마는 데 그치게 되는 게 더 강한 것 같다.

사운드의 채집은 작가가 그 안에 마치 그 작업들이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것이 되는 어떤 이질적인 문맥들을 신체에 입는 것인 양 무심하게 그 옆에 닿고, 그는 사운드를 천연스럽게 덧붙인다. 여기에는 빈 공간 안에 무언가 터지는 소리, 전화 같은 물질 매체를 타고 흐르는 목소리, 총의 격발과 장전의 사운드 등이고, 이는 섞이기도 하고 단속적으로 들리면서 의식에 침투한다.


빈 공간(진공)으로 느껴진다는 것이 중요하다. 진공 상태에서 효과음과 같은 사운드들은 음악을 만드는 대신 과정에서의 통통 튀는, 가령 진짜 튀거나 튀어 오르거나 폭발되거나 하는 소리의 사운드들의 조합으로 진행되게 된다. 시간은 없고 공간에의 조응만이 있다.

소음은 확장되지만, 즉 목소리는 중첩되면서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의 불투명한 정보로 치환되지만, 한결 부조화한 화음은 거세진다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자연스레 빠지게 되고 마이크는 무언의 존재를 반영하고 또 강조한다.

목소리는 표면적이고 총알은 실재적이어서 (공간의) 깊이가 있고 판타지적이다.

영상 속 오브제들은 소리가 없기에 오히려 그 소리로서 실체를 탐구하게 된다. 소리는 이 이질적인 화면에 접합되지 않고, 아니 화면은 묵묵히 그 소리들을 거부하고 있고, 이러한 서사의 흔적들만이 남는 영상은 우리 옆 그리고 우리의 공간을 지정해 주는 사운드와 함께 병치된다. 판타지와 현재(현실)로서.

하지만 이 병치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아무 것도 아닌 것들의 조합, 아무 것도 아닌 것을 만드는 듯 보이지만, 아무 것도 아닌 것만이 아닌 이 것.

출판은 이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출판은 가능한가, 출판은 허용될 수 있는가의 질문 아니 누가 허용하는가의 질문, 출판은 책을 가정하는가, 출판은 책을 만드는가, 책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질문은 계속 소급된다.

▲ 『고래, 시간의 잠수자』전단 [출처=국립극단 홈페이지]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 『고래, 시간의 잠수자』포스터 [출처=국립극단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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