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준 2009.05.11 22:11

 

NOW무용단(한국) & 라 꼼빠니아(아르헨티나), <so far...so close>

 

가장 흥미로웠던 작품은 <so far...so close>로 문화적 환경과의 뒤섞임을 재현적으로 나타내 바라볼 수 있다. 만남에 두터운 층위를 형성하고자 하는 많은 시도들이 일관되게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한국과 아르헨티나의 언어적 층위의 낯섦은 곧 타지에 온 한국인의 입장을 상정한다. 그리고 지구촌의 일일 생활권이 무색한 실제적 거리를 타진한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이는 마치 보릿고개를 넘는 것 같은 생활이 그 속에 형성되는 걸 가리키는 것 같다.

두 음악이 뒤섞이고 각자 다른 문화권의 춤을 추며 현재적 질서에서의 충돌을 부르기도 했고 옛 음악에 친숙하게 변종된 리듬의 몸짓을 스스럼없이 펼쳐내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아르헨티나의 뜨거운 정열을 옮겨 놓은 듯한 환경이 구축되고 있었는데, 우리의 음악도 대등한 크기로 간간히 흘러 나왔다. 땀과 숨을 자연스레 내뿜고 커다란 움직임에 근육의 탄력이 느껴졌다.

사실 정확한 시간과 공간은 상정키 어렵다. 남자를 마주하고 그의 허리에 올라탄 여자가 내는 신음, 그 앞에 팔을 휘둘러 소리를 지르는 아르헨티나 남자에게서는 어떤 혁명의 기운이 느껴졌고, 그런 둘의 관계가 맞물려 성적인 억압의 그림자 등이 파편적으로 머리를 스쳤다가 사라지곤 했다.

단편적인 아이디어들이 공동 안무를 짜는 데 실제적인 체현물로 나타나게 된 것 아닐까 싶다. 얼음을 가지고 노는 것도 꽤 재미있었는데 얼음으로 눈앞을 가리고서 문화적 경계의 일차적인 시선의 프레임을 상정하고, 또 한국 여자의 가랑이 사이에서 끊임없이 얼음을 배출하여 출산을 상징하거나 문화의 재생산구조, 보편적 인간 생활의 영위를 의미한다면 이어 밑에 내려놓은 얼음에 뒤돌아서 바지를 걷고 앉아 오한을 참아 가는 건 문화 적응에 대한 실제적 감각을 보여주는 것과 같았다.

 

그러다가 마구 뛰고 얼음을 갖다 대자 춤에 대한 강렬한 에너지와 연결됐다. 실로폰의 딩동 거리는 단순한 선율의 반복에 맞추는 움직임은 율동 같았다. 두 문화권은 조심스럽게 서로를 건드려 보는 정도로 진행됐는데, 이는 작은 선율을 내는 것과 같은 마치 상대방을 민감한 소리의 매질로 상정했다고 생각할 때 이해가 가는 것이었다.

 

로레타 리빙스턴&댄서스(미국) & 김삼진무용단(한국), <굴절>

 

 

태양빛이 가신 사막에 은은한 빛을 음미하듯 종교적인 느낌이 짙었다. 가장 키가 큰 남자가 정적을 깨고 웅혼한 소리를 폐부에서 끌어 올리자 분위기는 순식간에 흥미롭게 전환됐다.

“star, sea, light” 등을 속삭이는 자연의 신비를 가정하고, 그 하나하나의 대상물인 듯 저마다 자신의 개성을 지우고, 정령이 내재한 자연적 존재감을 드리우고 있었다. 마치 율동과도 같은 움직임은 조심스러웠고, 어떤 경건한 의식이나 순수한 내재적 본령에 가닿고자 하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것은 일견 춤의 역동적이고 주체적인 질서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아일노코(일본) & 그룹 콜래보레이션OR(한국), <View-Indicating(keshiki-ari)>

 


할머니의 자취가 영상에 어른거리고, 무대 왼편 구석에 앉은 여자의 몸에 그 내면이 덧입혀지는 듯하다. 미세한 시간의 깊이를 표현하고 이야기의 흐름을 상정하는 듯하지만, 이내 그 구분은 사라지고 세 명은 함께 노닐었다.

 

연주자는 하나의 이야기꾼이고, 여성 무용수 세 명은 이를 따르거나 듣고 반응하는 무의식적 생명체로 선다. 바이올린 선율의 즉흥 연주에 몸을 들썩거리고 탈싹거리고 튕기고 무아의 상태에 빠져듦은 무의지적이면서 음악의 강력한 힘과 서사 구조를 직감하게 한다.

소진하고 거의 탈진한 상태로 이르게끔 무용수들은 움직임을 발현하고 있었다. 한편 이것은 음악에 대한 몸의 흥미로운 반응 체계를 지켜보는 것일 수도 있었지만, 의식적인 몸의 충돌과 자각에 대한 결여가 아쉬운 측면이었다.

 

양국의 문화가 모두 녹아들어 각자의 자치를 내뿜는 <so far...so close>는 상대방에 대한 이질감이나 경계를 많이 지우는 데 따른 수많은 땀과 시간을 함께 쏟았음이 느껴졌다. 이들은 어떤 공동체적 의식을 형성하는 데까지 이른 것 같다.

두 작품의 경우는 새로운 형식적 지점을 창출하는 데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보이는데, <굴절>의 경우는 음악과 몸짓이 상상력이 담긴 환영적인 하나의 시적 세계를 직조하는 데 중점을 둔 대신 춤의 요소가 잘 살지 못했다면, <View-Indicating(keshiki-ari)>는 즉흥 음악에 따른 몸짓의 변화 과정을 살필 수 있는 것이 흥미로웠지만 음악의 힘을 넘거나 그 안에서 주체적으로 몸을 세우지 못했다고 보인다. 두 작품은 양국의 조금 더 자유로움을 담보한 충돌이 작업 과정에 투여됐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진 제공=성남국제무용제)
관람일자 및 장소 : 4월 27일(월) 오후8시,
성남아트센터 앙상블시어터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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