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준 2018.05.10 13:03

 

▲ 공연선 안무, <곰에서 왕으로>, 출연 김승록, 박유라, 공영선  옥상훈 (이하 상동)


공연의 제목은 나카자와 신이치의 대칭성 인류학의 철학이 담긴 카이에 소바주 시리즈의 한 권인 ‘곰에서 왕으로’를 차용했다. 책을 따르자면, 토템 신앙으로도 치환될 수 있는 인간-동물의 호혜적 쌍을 이루던 신화의 시대는, 왕이라는 존재의 탄생과 함께 거짓 신화의 중심축을 상정하며 멀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자연과 인간의 거리, 인간과 인간 사이의 위계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동명의 책이 인간과 자연(동물)의 대칭성이 상존하던 신화의 시대로 도약한다면, 본 공연은 오히려 현대의 신화에 대한 비판적 독해를 수행하려는 롤랑 바르트가 말한 신화학을 드러내는 데 가깝다. 이는 공연의 재현-상에 대입되는 몰입의 기제를 공연의 기계적 수행의 표면으로 전시/대체함으로써 공연의 내용으로서 신화의 감각으로 돌아갈 수 있음을 전제하는 대신 그러한 신화적 작동을 깨부수며(여기서 신화란 무대로부터 얻는 완벽한 환상과 믿음이다!) 퍼포머들의 개별적 움직임과 배경의 사물이 맺는 표피적 관계와 변화로 작업에 대한 관점을 이동시키고자 한다.

그러한 기계적 수행과 표면의 전시는, 오히려 신화가 죽어 버린, 신화로서의 무대의 작동을 멈춘, 신화학으로서의 비평적 관점의 작동과 함께 동시대의 물성적인 무대로 수렴되는 듯 보이는데, 가령 신화의 직접적인 캐릭터를 상정하지 않는 듯한 퍼포머 김승록은 처음부터 무대의 작동 메커니즘을 드러내는 무대 바깥의 시간에 위치함으로써 스태프로서의 존재를 드러내는데, 이런 무대 내 경계로서의 그가 무표정한 얼굴로 멀쩡하게 서서 릴 선을 갑자기 돌리는 동작은, 허공에 일으키는 바람이 만드는 공간의 균열과 확장이 신화적 코드로 독해 가능(이는 ‘원’이라는 도상 자체의 구현이기도 할 것이다.)하면서도, 그럼에도 단지 릴 선을 돌리는 동작일 뿐임을 벗어날 수 없이 드러낸다. 그러니까 이 작업은 동명의 책의 이야기에서 일정 부분 몇 가지 상징들을 가져오기는 했지만, 이야기의 재현이나 해설을 하려는 부분이 없을 뿐더러, 책이 갖는 철학적 세계관을 메시지 코딩으로 수용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 표피가 어떤 식으로 작동되는지를 드러내며 ‘이것은 무대의 물리적 변환을 드러내는 것뿐입니다!’(이 작업은 사실 신화를 차용할 뿐―그것은 이름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신화를 드러내지는 않는다.)라고 주장하는 데서 시작한다.

여기서 그럼에도 바람이 내는 효과(사실 이 역시 무대 메커니즘의 일부로 드러나는데, 마이크가 무대에 부착돼 소리를 포착하며 시차를 두고 하울링의 효과를 만들기 때문이다.)에 따른 신화의 장면이 펼쳐지고 있다고 느끼는 것은 자유일 테지만, 공연은 그 효과의 기원을 즉자적으로 나타냄으로써 그 기원의 신화적 효과를 지운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그런 순간들 자체의 심미적 가치들의 차이를 좇아야 하는 것 이전에, 관객은 이런 비판적 거리 두기의 일관된 코드로 공연을 수렴시키는 쪽이 더 맞는 듯 보인다. 곧 세 개의 단편, ‘바위’, ‘동물’, ‘원’에서, ‘이것은 세계(신화)가 아닌 무대일 뿐(신화학)’이라는 일관된 하나의 코드가 관통한다.

여기서 신화적 도상을 차용한 공영선, 박유라의 무대 내적인 현존은 김승록의 무대 경계적 현존보다 결코 더 크지 않다는 점은 특기할 만한 부분이다. 전자는 분명히 어떤 캐릭터성을 주장하지 않기도 하지만, 파편적인 움직임들로 무대를 누비는 데 (의도적으로) 그친다. 정면성(캐릭터의 전면화)을 획득한 부분은 원을 돌리는 김승록의 동작이 거의 유일하다. 반면 다른 둘은 마치 사물의 일부이거나 특정 장소에 귀속된 것처럼 움직인다. 이것이 세계의 변전이 아니라 무대의 변환임을 드러내는, 가령 조명 색을 바꿔 단 것에 따른 물리적 변화와 같이, 그 무대의 신화는 무대 메커니즘의 작동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유래함을 보여주며 동시에 그 무대의 신화는 깨지게 된다. 어쩌면 박유라가 무대에서 무대 바깥을 넘어 완전히 사라졌다 다시 무대로 건너오는 장면에서, 박유라의 모습은 신화의 불투명한 세계가 겨우 존속되고 있었음을 드러내는 데 적당해 보인다(‘움직임의 동기는 그 자체로 주어진 것이고 그것은 자의적인 규칙에 의거한다!’).

이런 무대(신화)에서 무대 밖(신화학)으로의 순간적 도약에 김승록이 있고, 또한 공연의 메시지가 있는데, 이는 최근 무대/기계 메커니즘의 작동과 퍼포머의 기계적 수행만으로 발생하는 무대의 효과가 그 비어진 미니멀리즘의 무대에 신화적으로 들어차는 정세영의 작업을 떠올리게 한다. 심미적 동작을 전혀 수행하지도, 또 수행할 수 없는 일반인의 신체를 퍼포머로 현존시킨다는 점에서 그런 무대의 단순한 장치적 현존을 극대화시키며 무대라는 신화(학)를 메타적으로 드러내는 정세영의 작업에 비해, 나카자와 신이치의 신화라는 것은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옷에 가깝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가죽은 무대의 일부라는 것을 반복해서 드러내며 곧 무대를 들어내며 끝낸다는 점에서(이러한 장면은 처음 무대를 구성하고 있던 무대 바닥을 거둬 내는 것에서부터 시작, 반복된다.), ‘신화라는 맥거핀’ 자체로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신화를 신화학으로 분쇄하는 이러한 작업은, 움직임을 자율적으로 위치시키려는 의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심미적 대상으로서 퍼포머의 움직임을 짜(고 그 바깥의 것을 모두 지우)는 대신(또는 수렴시키는 대신), 발생하는 모든 것이 무대를 구성하고 있음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바위’, ‘동물’, ‘선’과 같은 도상에 부착되는 또는 도상을 구성하는 움직임은 신화에 기생하며 동시에 신화(무대)의 작동 원리를 드러내는 것으로 나아가며 신화를 배반한다. ‘보이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 보는 것’은 그 보이는 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앎으로써 가능하다. 이러한 신화학의 원리의 구현은 <곰에서 왕으로>에서는 신화에 기생함으로써 가능해진다. 그러니까 신화를 분쇄하기 위해 신화가 필요했던 것이랄까.

한편으로 이러한 코드는 보이는 모든 것의 움직임으로 확장되어 가는 무대를 정초하기 위한 것이라는 일종의 가설을 세우게 한다. 공영선의 숨을 참았다가 뱉으며 연극적 효과를 과잉적으로 창출하거나 갑자기 돌기 시작하는 움직임 등 무대 내적인 움직임들은, 가령 움직임이 신화의 도상에 복속되는 대신, 움직임 자체의 복권을 주장하는 것 아닐까. 이것은 정녕 ‘곰에서 왕으로’라는 책(의 재현)이 아니다. 하지만 그 신화는 표면의 궤적을 따라 수행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신화의 감각으로의 돌아감'이 이 공연에서 전제되지는 않지만, ‘돌아가지 않음’을 전제하지도 않는 것이라는 점에서, 이 공연의 ‘신화’로서의 가능성 역시 남겨둘 수는 있을 것이다. 어쩌면 <곰에서 왕으로>는 신화에서 신화학으로 나아간다기보다는, 신화와 신화학 사이에서 어떤 제 3의 가능성을 찾고자 한 것은 아닐까. 신화학이 깨부수는 것은 신화가 아닌 재현이라 하겠다, ‘신비로운 내용적 진실’(그것은 ‘신화’ 그 자체가 아니다!). 어쨌거나 그것은 표면 그 자체의 응시와 인식의 궤적으로부터 비롯된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공연 정보]

공연일정
일시: 2018년 4월 19일(목), 4월 20일(금) 오후 8시
장소: 서강대학교 메리홀대극장안무: 공영선
출연: 공영선, 박유라, 김승록
사운드: 홍초선
의상: 황새삼 Stromovka
조명: 공연화
기술: 김광섭
무대감독: 박민호
일러스트레이션: 최지욱
그래픽디자인: 김민재
워크북: 허영균
기록사진: 옥상훈
기록영상: 남지웅
프로듀서: 신진영
후원: 서울문화재단 서울무용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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