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준 2018.04.03 12:24

▲ 임샛별 안무, <소녀>, 출연: 신호영, 김보람, 정록이, 김수인, 이주희, 양지연, 한윤주, 이홍 BAKI[사진 제공=LDP](이하 상동)

오른쪽에 위치한 실루엣을 드러내는 얇은 천의 구조물은, 안과 밖의 경계를 만드는 동시에, 상대적으로 좁고 드러나지 않는 공간인 만큼 내밀하고 신비한 공간으로 상징화된다. 따라서 이 공간 안으로 들어감은 어떤 변화의 부분을 상정하게 된다(사실 이는 실제 미의 지배적 도상으로 자리하는 웨딩드레스의 거대한 밑으로, 실제의 웨딩드레스 안에 사람들이 위치하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이들은 거대한 규칙 혹은 지배적인 힘 아래 움직이는 타율적 존재들로 표상되는데, 따라서 개별성을 갖기보다 어떤 제의적 장면들 또는 마법의 힘에 예속되었다는 느낌을 준다. 이들이 개별화된 주체로 자리함은 그런 집단적 의례의 구속―정면을 보며 한쪽 어깨를 약간 쳐들고 옆 사람과 맞대고 이동하는 부분과 같이 일렬로 집단을 이루던 것―을 벗어나서 흩어지거나 상징적 공간의 통과의례를 거친 이후이다.

▲ 임샛별 안무, <소녀>

피아노 연주는 이러한 상징적인 절차에 어떤 뚜렷한 목소리를 유일하게 부여하는데, 어떤 행위들의 연속은 주체적 의지와 연관되지 않음으로써, 일정한 절차적 정의를 보여주는 데 그치는 듯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어떤 가상을 재현하는 것에 가까우며, 이는 움직임 자체의 고유한 리듬을 만들지 않는데, 여기서 건반은 순전히 물리적인 측면에서 리듬을, 그리고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대신한다는 측면에서 존재를 상정한다.

소녀를 통해 나타내고자 한 “순수함”은, 페미니즘적 의제를 함축한다기보다는, 타인의 세계를 욕망하는 사회 시스템 바깥의 구멍(이 아닌)을 찾고자 하는 어떤 욕망 자체를 가리키는 데 가깝다. 따라서 반쯤 투명한 공간이 적용하는 또 다른 마법은, 공간 바깥의 전-의식적인 세계와 대비되면서 하나의 쌍을 이루는 또 다른 현실의 어떤 도피처 그리고 상상계의 구현이다. 하지만 보이스 오버라고 할 수 있을 피아노 연주가 한 명의 인물에 맺힐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러했다면, 어쩌면 ‘순수’라는 것은 현상을 깨면서 순수한 대안을 산출할 수 있었을 것이다.

▲ 김성현 안무, <이념의 무게>, 출연: 강혁, 정록이, 윤나라, 정건, 이주희, 이홍

 

 

기울어진 얼굴과 스크린을 앞뒤로 하는 회전 구조물, 그리고 또 하나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스크린까지. 공연은 파편화된 오브제의 일시성을 강조하는 일종의 영화적 시선과 편집을 구현하고자 한다(크레디트는 거꾸로 영화 구조 안에 이후의 무대를 삽입시키는 것과 같은 효과를 발생시킨다). 스크린은 일종의 무대 시작 전의 예고편이며 무대에 대한 시선을 미리 제시한다. 여기에 미디어 자체를 매체적 성질―그 연장선상에서?―과 접면시킨다. 총과 폭탄 등 무기의 실물 등장과 그보다 입체적인 사운드 스케이프는 세계의 전쟁화(라는 가상)로써 무대를, 현실을 잠식하고자 한다. 그러한 현실 자체가 아닌 미디어에 잠식된 현실의 어떤 기이함을 산출하고자 한다. 가령 해골을 들고 천천히 이동하는 사람과 같이 ‘바니타스’의 상징적 도상이 차용되기도 한다. 더군다나 돼지 머리를 정면으로 향하게 들고 이동하는 사람과 같이, 인간을 돼지―집적된 욕망의 산물―로 비유하는 이미지들도 그 안에 속한다.

▲ 김성현 안무, <이념의 무게>

한편으로 회전무대를 통해 영상에서 현실로 스크린은 인계된다. 기울어진 얼굴이 뒤집힌 스크린은 앞 화면을 차지하고, 뒤의 스크린은 흔들리는 카메라로 현재를 상연한다. 이는 관객을 침투하기도 한다. 현실의 복잡다단한, 아니 화려한 외양은 사실 개체들의 다양함으로써 세계의 층위를 대체/설명하려는 작품의 이념이기도 하다. 곧 결과적으로 주장되는 바는 정치적 이념의 결말은 사람들의 다양한 취향이다. 그러니까 이는 올바름의 문제가 아니라 동조나 동조될 수 없음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러한 위험한 자각은 작품의 혼란스런 분위기를 통해 구원된다. 이 작업의 요체는 무엇보다 매체적 전유를 통해 영화적인 관점이 주는 충격을 신선함으로 가져가려는 데 있다고 할 것이다.

이정민 안무, <거울 앞 인간>, 출연: 장원호, 정건, 장지호, 송승욱, 정하늘, 김보람, 신호영, 양지연

정면과 양 측면에 위치한 거울은 실제 기울어짐으로써 공간의 변형을 꾀한다. 이는 물리적 지지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사실상 무대의 전체 높이는 관객석 위에 위치하며, 따라서 공간 전체의 변형이 끼치는 관객에 대한 영향은 심리적 기울기에 가깝다. 거울은 직접적인 비춤을 위해 존재하기보다 공간에 대한 투명하고 과감한 변형―비가시적 힘의 작용과 효과―을 위해 존재한다. 이런 시각의 작용은 몇 가지 행위나 설치에서도 이어진다. 과연 컨베이어벨트 위의 공기를 집어넣어 부풀어진 봉지를 터뜨림은 상징적 행위에 불과할까. 또 한편으로 반투과 프레임은 안과 밖을 나누는 데 그치지 않고, 안의 사람을 시선의 차이에 따라 형해화시킨다.

이정민 안무, <거울 앞 인간>

공사장 소음으로 환기되는, 육박해오는 사운드는 몸을 결코 제자리에 두지 않는다. 러닝머신에서 계속해서 미끄러지듯 뛰면서 옷을 입고 벗는 행위는 경계로서의 신체를 확인시킨다. 이는 또 다른 옷들의 확인이 아닌, 죽음이 전환되는 순간들로서 행위 자체에 사유를 수렴시킴으로써 소진되는 신체에 타당성을 부여한다. 이는 수많은 인격을 동시에 표상(하지 못)한다. 동시에 그는 뒤돌아 있다는 점에서 얼굴 없는 비체이다.

이 두 가지 도식, 공간의 변형과 신체 혹은 이름로부터의 탈주는, 기울어진 배 동시에 바다에 잠겨 가는 배의 영상으로 이어진다. ‘세월호’다. 외상의 이미지, 매우 그것은 선명했다. 거대한 스크린을 통해. 어쩌면 미디어적 기억이 트라우마로 직결되는 사회적 경험에 비추어, 이런 이미지 자체의 물리적 크기가 주는 힘이 한층 더 유효하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파편적 이미지들이 펼쳐지는 가운데서도 마치 뒤돌아서 비스듬한 각도로 달리는 퍼포머의 공간 자체가 기울어져 보이는 착시를, 기억을 전하고 있듯.

p.s. LDP 무용단의 실험이라는 테제는 매년 자유 접속 테마에 가깝다. 조금은 대중없다고도 표현할 수 있을 텐데, 이번의 경우 ‘외모에 대한 사회적 기준’(임샛별), ‘역사적 이념과 개인적 신념의 간극’(김성현), ‘기울어진 운동장으로서 사회에 대한 비유’(이정민) 등 전체적으로 사회적인 의제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겠다. 이는 사회 현상에 대한 소재주의에 그치는 것일까, 미학적 완성도로 이어질 수 있는 부분일까의 측면에서, 이정민의 경우 재현 이전에 추상적 표현이라는 것들의 선명한 가시적 나열이 현실을 가상으로 치환하며 종합되듯, 예술적 관점이 타진한 사회라는 부분에서 어떤 유효함 역시 있었다고 보인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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