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준 2018.03.16 03:06

▲ 《포인트 카운터 포인트(Point Counter Point)》 2층 전시 전경 김연제[사진 제공=아트선재센터]

5명의 작가가 아트선재센터 2, 3층을 사용한 전시 《포인트 카운터 포인트(Point Counter Point)》[기획: 김해주(아트선재센터 부관장)]는 공간 디자인의 성격이 강한데, 작업은 공간의 재형성을 통해 관람객을 공간에 대한 인식으로 이끈다. 따라서 작업은 공간을 포함하며 공간에 포함된다. 모든 작업은 2018년 제작된 것으로, 한편 2층과 3층으로 분리되는 동일 작가(이수성, 김동희, 김민애)의 작업에서, 이수성 작가의 작업(<무제(Quarter Pipe)>)의 경우, 한 작업의 다른 판본으로서 공간의 중심에 자리하며 연결돼 두 개 층을 잇고 횡단시키는데, 반면 김동희 작가의 공간적으로 분리된 두 작업(<볼륨: 타입 1, 2>)은 하나의 이름 안에서만 분절되며(이는 의도된 오기로 보이는데, 분명 2층으로 분리되는 두 다른 작업이 ‘1’과 ‘2’를 상정하는 듯 보인다) 개념적으로 두 공간을 잇는다.

▲ 김동희 <볼륨: 타입 1, 2>, 거울(동경), 알루미늄 프레임, 카페트, 의자, 스테인리스 파이프, 가변크기, 2018.

2층 입구에 놓인 창문 앞 창문 바깥으로 펼쳐진 여섯 개의 원주와 그 바깥을 연장하는 카펫은 부지불식간 작품과 연계된 구획, 장소로 관객을 포함시키는 당위의 구획을 만든다. 결과적으로 2층의 <볼륨: 타입 1, 2>은 바깥과 안을 상상적으로 연동시키며 작품의 바깥을 온전히 차단할 수 없게끔 한다.

▲ 오종 <방 드로잉(모노크롬) #4>, 아크릴판, 쇠막대, 실, 체인, 추, 낚시줄, 연필선, 페인트, 가변크기, 2018.

오종 작가의 <방 드로잉(모노크롬) #4>는 작업의 영역을 상정하는 천장—그 외의 공간은 천장+형광등으로 볼 수 있다—의 마감과 작업을 비추는 바닥 아래의 형광등이 작업 이전에 더 부각된다. 칸막이 천장은 작업 반경에 걸쳐 일부를 마감한 것으로, 공간에의 분포는 가시적이기보다 비가시적이며 결과적으로 지시적이다. 그것은 그 밖의 전체 공간과의 구별을 통해서 의미를 획득한다. 반대로 면(이는 오종의 드로잉으로 연장된다)의 채워짐은 면의 채워지지 않음을 정의하며 공간 전체의 스케일을 작품에 포함시킨다. 바닥 아래 조명 역시 마찬가지이다. 마치 이러한 공간적 분별과 맥락을 같이 하는 듯한 사각형의 채워지지 않는 모서리를 갖는 허공의 설치 작업은, 거리에 따라 완성된 사각형에서 빈 모서리에 대한 인식으로 나아간다. 있음은 없음을 환기시킨다.

이수성 <무제(Quarter Pipe)>, 각각 MDF위에 페인트, 합판 위에 왁스, 1821 x 1012 x 1904 mm, 2018.

스케이트의 미끄럼틀 혹은 도약대의 도상을 한 큐브, <무제(Quarter Pipe)>는 2층과 3층을 각기 다른 축척의 비례를 통해 공간을 잇고 시험하는데, 2층은 실제 건물의 나머지 공간에 대해 1/16의 축척이 적용됐다. 약간은 좌우의 곡률이 비스듬하게 적용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는 약 450㎡의 사분원 형태로 구성된 아트선재센터 2/3층과 더해지며 육면체를 완성한다는 개념이 전제돼 있다. 한편 3층의 바닥은 2층의 콘크리트에서 나무 재질로 바뀌는데, 이러한 공간 설정을 상징적으로 포함하는 것이 또한 이수성의 작업이다. 3층의 <무제(Quarter Pipe)>는 1/8 축척을 띤다—즉 2배로 커졌다. 2층에서는 동일 크기의 두 작업이 사선으로 놓이는데, 앞의 작업이 전체 공간의 흰색을 띤다면 뒤의 작업은 예외적으로 나무 재질이며 이는 3층 공간을 선취한다. 그리고 3층의 작업은 바닥과 같은 재질로 평범해진다.

▲ 김민애 <소실선>, 철, PVC텐트, 밧줄, 1150 x 80 x 3, 1150 x 80 x 25 cm, 2018.

김민애 작가의 <소실선>은 공간의 벽을 안으로 반복하며 비가시적 경계로 자리하는데, 작업은 약간의 거리를 둔 두 개의 오브제로 공간을 반영하는데, 곡선의 막대 같은 오브제 옆의 막대를 가에 댄 패널 오브제는 뒷면으로(만) 노출된다. 그리고 이 두 오브제는 넘거나 ‘정면’에서 보기를 거부한다. 이는 공간의 실제적 경계를 상상적으로 그리면서 제도적 관습을 부가하여 넘어설 수 없는 수행적인 지침(‘펜스’를 넘지 마라!, ‘작업을 가로질러서는 안 된다.’)이 된다.

▲ 김동희 <볼륨: 타입 1, 2>, 거울(동경), 알루미늄 프레임, 카페트, 의자, 스테인리스 파이프, 가변크기, 2018.

공간 모서리를 두르고 있는 가벽(3층의 <볼륨: 타입 1, 2>)은 즉물적이면서 동시에 상상적인데, 벽에 누인 작업은 적잖이 스펙터클한 가운데 한 눈에 포착되지 않는 사물인 동시에 가까이 위치했을 때의 거울은 왜곡된 공간 안에 관객을 가두고 응시하기 때문이다. 한편 빌딩의 반사되는 창문 바깥과 안이 전도되는 상황은 역시나 이 공간이 안이고 그 바깥은 단지 벽이라는 점에서 상상적이다. 결정적으로 이러한 ‘외벽 인테리어’는 실질적인 부피로 가시화되기보다 전체 공간의 빈 형태 자체를 지각하게 하는 공간 전체의 가장자리로 소급된다. 이는 작업으로 온전히 분리될 수 없는 공간의 한 분포이다.

▲ 《포인트 카운터 포인트(Point Counter Point)》 3층 전시 전경, (사진 왼쪽) 최고은 <화이트 홈 월> 2018,스탠딩 에어컨디셔너, 가변크기, 2018. (사진 중간 앞쪽) 김민애 <검은, 분홍 공> 2018,포켓볼 공 15개, 지름57 mm, 2018. (사진 중간 뒤쪽)

에어컨의 뒷면들을 평평하게 이어 마감하는 동시에 천장으로부터 설치해 띄운 최고운 작가의 <화이트 홈 월>을 클로즈업 하면 작품의 실재적 재질은 완전히 매끄럽지 않고 맞물리지 않는다. 이는 클로즈업되지 않은 거리에서는 동일 작업(거울)들을 반복한 3층의 <볼륨: 타입 1, 2>와 유사한 맥락으로도 읽히는데—‘일종의 미니멀리즘 조각의 단정한 반복들을 통한 스펙터클적 확대’의 차원에서, 실제의 시간/장소적 맥락이 전제되며 레디메이드 오브제와 분기된다—하지만 마치 작업은 ‘미술’인 것과 ‘미술이 아닌 것’의 분기로 조합되는 가운데 이러한 맥락은 ‘우둘투둘한 마감’의 표면으로 온전히 흡수되지만은 않는다. 이는 이 전시가 작업의 경계를 오로지 공간에의 분포로만 가능하게 하는 점에서 유래하는 측면일 텐데, 가령 작업의 앞면과 뒷면을 마감/미감의 차원에서 구분한다면(앞면은 상대적으로 뒷면에 비해 매끈하게 연결되며 색에 있어서도 안정적이다), 작업의 앞면은 작업의 뒤로 돌아가서 봐야 하고, 작업의 뒷면은 공간 전체에서 미리 포착되기 때문이다—따라서 작업의 전면은 오히려 작업의 뒷면이 된다

당구공의 개입(김민애 작가의 <검은, 분홍 공>)은 <무제(Quarter Pipe)> 앞에 놓여 있는—<무제(Quarter Pipe)>가 색에 있어 공간과 구분되지 않는 반면—매끄러운 공간의 어떤 얼룩 같은 것들로, 관객을 불편하게 만든다. 발을 딛고 있는 바닥은 공과 함께 공유되며 공은 어떤 가시적 경계를 따로 갖지 않고, 그 자체가 (비)가시적 경계로 작용한다. 그리고 이는 일정 정도 색의 대비, 곧 검은색과 노란색에 가까운 나무 바닥의 색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 김동희 <볼륨: 타입 1, 2>, 거울(동경), 알루미늄 프레임, 카페트, 의자, 스테인리스 파이프, 가변크기, 2018.

작업들은 미니멀리즘적 조각으로 집중을 유도하기보다, 일종의 인테리어 오브제로 공간에 반영된다. 관객은 여러 공간들에 포함된다, 넓게 또는 좁게, 멀리 혹은 가까이. 거리에 따라 이러한 관람은 직접적인 접촉을 유도하기보다(접촉면을 상정하는 작업은 없다) 보이지 않는 펜스를 소거하며 작업과의 거리를 한 단계 축소시킨다(아마도 안정적인 거리는 카메라로 확보되고 이어 SNS로 연결될 것이다). 이러한 공간은 아트선재센터에 대한 장소 특정적 재해석이 아닌, (빈) 공간을 만들며 관람 환경 자체에 대한 질문으로 소급된다. 작업들, 아니 공간에의 분포들은 관객의 체험과 인식에 결부된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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