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준 2017.09.15 12:27

 

▲BOW-컨셉컷©gunu Kim(이하 상동)

첫 장면은 옆으로 무릎을 꿇은 가면 쓴 이가 의식(儀式)을 치루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후 상대방이 절을 받는 위치에 서긴 하지만, 그 이전까지 꽤 길게 진행되는 의식에서 관객의 시선을 비껴난 보이지 않는 존재는 절대자에 가깝고, 고정된 자세로부터 흘러나오는 의식의 과정은 그에 대한 저장된 몸의 기억으로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일관된 표정으로 고정시키는 가운데, 의식은 얼굴로 수렴된다. 얼굴은 하나의 미스터리한 기호이자 끊임없이 각인된다.

<Bow>는 인사라는 인간의 문화 상징적 자본을 실체화한다. 첫 번째로 의식의 측면에서 절을 인간의 체화된 의식(意識)으로, 두 번째로 인사의 여러 자세들에 대한 고찰을 바탕으로 한 움직임들로, 세 번째로 인사를 할 때의 정적인 포즈로 인사에 접근한다. 인사는 멈춤이라는 포즈와 시간을 포함하는 것이다. 현악기 소리와 맞물리며 정적인 공연은, 순식간에 빠르게 감기 모드로 또 혼란의 질서로 증폭되는데, 인사의 잠재적 측면을 음악이 시각화한다고도 볼 수 있겠다.

결과적으로 그러한 여러 차례의 변전을 거듭하는 가운데 공연에서의 인사는, 처음에는 몸을 늦추고 낮추며 서서히 시선이 상대방으로부터 사라지는 일반적 예법에서 벗어나, 다시 몸을 들며 시선을 맞추고 가는 식의 미묘한 차이를 갖고 변질된다. 이를 종합하면, 인사는 계급적 분별을 확인시키는 안심의 제스처이면서, 상대방을 탐색하는 은폐된 공격성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음악적 증폭에 따른 무대의 변전적 화법이, 인사가 갖는 컨텍스트의 존재를 알리는 차원을 향해 있다고 본다면, 다른 한편으로 인사 자체는 신비화되어 있는 듯 보이는 무엇이다. 곧 그 신비함에 숨는 게 아니라, 신비함으로 귀결되는 게 아니라, 그 신비함으로 포장된 것이 인사임을 보여주는 것이 <Bow>의 목적일 것이다. (그리고 그 신비함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무용수는 임샛별로, 고정된 미소의 가면 같은 얼굴은 지배적인 동시에, 솔로 신에서의 힘과 절도, 부채를 들고 뒷걸음질로 사라질 때 유일하게 비스듬하게 얼굴을 보인다거나 하는 여러 몸의 기울기 조절이 가장 뚜렷한 궤적을 남긴다.) 그러니까 일견 종종 걸음의, 미소를 띤, 부채라는 오브제 등등은 마치 동양의 신비로운 의식적 자세들로 작업을 귀결시킴은, 또한 수동적인 동양의 상을 심미적 쾌감 아래 진행시키며 스테레오타입화하는 것처럼 보이는 일면은, 인사가 갖는 컨텍스트와의 연결을 희미하게 가져가는 가운데 희석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Bow>를 전통에 대한 형태적 변용 및 컨텍스트에 대한 현대 철학적 탐색으로 볼 수 있을까. 어쩌면 동양 전통에서의 인사라는 컨텍스트를 탐구하는 가운데, 동시에 인사의 움직임들을 분절적으로 변형시키며 재구성하는 움직임 리서치를 진행하는 가운데, 인사에 대한 언어적 정의의 리서치를 거쳐 동서양이 희미하게 맞물리며 인류학적 연구로 <Bow>는 나아가는 듯 보인다. 그러나 인사의 도상적 나열에서 표면의 반복적 차이를 새기는 측면에서는 다소 아쉬움을 남기며(어깨를 살짝 들썩이는 움직임 정도가 커튼콜 이후에 익숙한 동작으로 다가오는 정도다.), 그 텍스트들을 꾀는 특별한 지층을 분명하게 드러내지는 않는다.

맥락의 축적을 가로지르는 형태적 조직이 결국 중요하달까. 그러나 첫 번째 장면에서 절대자와 같은 존재를 상정할 수 있었던 것과 같이, <Bow>는 인사를 받는 이를 온전히 드러내지 않는다. 아니 그럴 수 없음을 깨우치는 것, 곧 대타자의 부재를 증명하는 것이 현란한 표면의 변주(특히 조명은 음악과 함께 단조로운 무대를 일순간 변화시키는 동력이 된다.)로서 <Bow>가 나타내는 바가 아닐까.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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