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준 2017.07.25 14:40

소재주의적 나열? 혼합적 병치?

▲ <용비어천가>[사진 제공=국립극단](이하 상동)

재미교포로 나오는 김신록은 한국인들에 둘러싸여 한 걸음씩 호기심을 안고 앞을 건넌다. 마치 이질적 시공간에 대한 체험과 여행을 하는 듯한 설렘으로 그는 한발 앞서거나 뒤따르는데, 백인 사회에서의 한국인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을 연기해 백인의 경멸, 혐오적 시선을 미러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이 작업에서, 김신록은 어떤 분노나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웃음을 띠고 있다. 마치 마네킹 같은 표정을 지녔다. 그러한 얼굴이 그를 지배한다. 한복을 입은 한국인들, 아니 동양인들의 영속되는 신화의 재현과 표상에 대한 낯섦과 거리 두기가 또한 그를 통해 체현된다. 그의 몸 자체가 곧 디아스포라다.

중간에 비스듬하게 앉아 뺨을 맞고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는 울먹이는 듯한 영진 리가 놓인 빈 표백된 시공간의 영상의 삽입은, 보이지 않는 폭력적 잔재를 비실체적인 것으로 증명해 내려 한다. 연극을 가상의 효과로 지정하는 자신의 모습은, 고삐 풀린 연극의 행위자들의 자유로움을 오히려 가능하게 한다고 할 것이다. 중요한 건 영진 리에게 가해진 폭력이 아니라 그 폭력 이후에도 그의 고개가 다시 카메라를 향한다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연극은 아시아에 대한 자신의 무지와 아시아에 대한 미국인의 편견 사이에서 일정한 비판, 미러링으로 수렴되지 않고 논쟁선상에서 담론의 거리들로 나열된다. 따라서 혼란스럽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결과적으로 절대적 타자로서 자아에 대한 응시, 곧 거울을 응시하듯 카메라를 보는 영진 리를 일종의 잉여로 둔 채, 정위되지 않는 자신(김신록)이자 그로부터 출현하는 불안전한 자아의 불균질한 언어들로 이뤄진 연극은, 모호하게 펼쳐지게 된다.

또 하나의 꼭짓점은 형식적인 커플, 역할 놀이를 변주하며 일반적 남녀 갈등을 상정하는 정장 차림의 남녀인데, 다분히 그들의 사치스럽고 과잉적인 유희는 경멸적인 의식을 깔고 있다. 개체적이고 특수한 자아의 위치에서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동시대적인 의식으로 점프하는 것은, 발언을 통한 전달에서 대화를 통한 연기로서 현실을 삽입해 관객의 혼란을 불식하고자 함일까, 아님 점점 대화가 이오네스코식 부조리 연극으로 변해가는 가운데 혼란의 질을 내용에서 형식으로 치환하며 (이것만이) 연극임을 또는 (다른 모든 부분은) 연극이 아님을 동시에 보여주고자 한 것이었을까.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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