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준 2017.04.04 18:07

▲ 김보라 안무, <인공낙원> 연습 장면 [사진 제공=팔복상회] (이하 상동) 

일단 눈에 띄는 건 하나의 거울이다. 무대를 비추는 커다란 경사진 거울은 거의 무대 크기를 육박하며, 무대를 포획한다. 불완전하고도 충만하게. 실재를 왜곡하며 동시에 변전의 상으로 실재를 채운다. 거울은 단지 복사와 복제를 수행하는 대신, 아가리를 벌리고 현재를 주어담고 동시에 기울기를 조절하며 하나의 시선으로 모든 것을 붙드는 것이다. 곧 거울은 관객이 보지 못하는 면이자, 하나의 주체적 역량으로 운동을 한다. 그러므로 거울은 하나의 가벼운 시선이자 묵중한 신체다. 동시에 커다란 환경으로서 거울 장치는 마찬가지로 빛과 색채, 그리고 사운드와 함께 환경을 직조한다. (화려한 의상들은 거울에 적합한 비춤을 선사한다.) 이 안의 존재자들은 그 환경의 커다란 자장 아래 관계를 맺지 않고 끊임없이 저마다의 좌표에서 분절된다. 마치 무성의 생식 작용을 하는 것과 같은 퍼포머들의 움직임은, 커다란 스텝의 궤적을 만들지 않는 가운데 움직임은 시선으로 소급된다. 아무것도 가리키지 않는 시선. 시선 자체에 포획된 움직임은 자신만의 텅 빈 시선을 만든다―또 하나의 거울로서. 곧 퍼포머들의 시선은 거울 장치의 디테일한 완성에 다름 아니다. 거울이 90도로 수직이 되면 무대 바닥은 마치 대리석처럼 매끈하고 미끈해진다. 그것은 또 하나의 거울과 가다. 반면 검은 빛으로 무대를 비출 때 무대의 표면은 측정 불가한 깊이로 존재했었다. 이러한 환경은 존재 자체의 성격을 극단적으로 저울질한다.

퍼포머들의 움직임은 어느 순간부터 스피커로 반향된다. 스피커는 무대를 청각장으로 만든다. 시각장에 포획되는 데서 나아가 청각장 안에서 증폭된다. 퍼포머의 현존은 강화되고 한편 그 사운드 자체로 측정되며 제한된다. 움직임이 커다란 밀도를 빚어 내면서 움직임은 자연스레 줄어들고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미니멀한 몸짓이 이미 충만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시청각적 신체는 발걸음마저 음악의 전주쯤으로 읽히게 하는 효과를 낳는다. 한편으로 사운드의 단위는 움직임을 지정한다. 사운드는 움직임의 단위를 파생시킨다. 하나의 등가 교환처럼. 모델과도 같던 인물들은, 아니 현실 속의 존재자들이 아닌, 비인간의 형상으로도 읽히는 퍼포머들은 의식―비의식마저도―을 갖추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 어떤 순간에는 관계가 맺어진다. 인형처럼 서 있는 상태에서 머리를 따는 이가 동시적으로 존재하는 상황, 이는 의지와 의식으로 확장되기보다 무의지와 비의식의 표피를 한층 강화할 뿐이다.

마침내 거울이 사라진다. 위로 떠서. 이는 세계의 사라짐을 의미한다. 과연 그러한가. 모아레 무늬와 같이 무대는 드러나고, 퍼포머들의 움직임은 마치 뮤직비디오 속 인물들 같다. 치렁치렁 가지를 내린, 거꾸로 선 나무들이 내려오고 인공정원을 완성한다. 머리를 내리고 얼굴을 가리고 추는 동작들이 빚어지는데, 시선은 그에 따라 여기저기로 분산되며 찾을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모두는 껌을 나눠 씹는 일시적인 공동체가 되는데, 이는 일차적으로는 유대적 관계 맺음의 사건이라기보다 껍 씹는 소리의 반향을 측정하는 것으로 드러남에 가깝다. 곧 무대는 좌표를 지닌 행위자들을 측정하는 무대 자체로서의 행위에 가깝다. 뚝딱거리는 소리와 움직임이 행위하는 인간 유형을 조직한다. 마지막 막이 내리는 순간까지 몸은 빛이 쨍한 찬란한 환경 속에서 행위를 하고 이는 틈으로 포획된다.

인공정원이 만들어졌을 때 존재자들은 껌을 씹고 나누어 씹는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대상과 상호 작용 할 수 있는 신체의 역량을 누리게 되었다. 아니 상호 작용 할 수 있는 환경 자체가 생겨났다. 이에 대한 신체, 움직임의 변화는 그 전에 비해 매우 짧다. 이는 왜 잘 재단된 자연 환경을 가리키는 정원이 아닌 낙원일까. 초월적 시선과 세계 이후에 주어진 환경. 그것이 해방과 자유를 이야기하기에는 급작스러운 주어짐으로 인해 생겨났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인공'이란 낱말과 '낙원'이란 낱말은 이질적으로 배합되며 서로를 배반하고 동시에 완성한다. (낙원은 인공에 의해 주어지고 인공을 감추는 순간 이후에 마치 처음부터 그러했던 것처럼 존재한다. 반대로 인공은 스스로의 흔적을 감추며 낙원을 구성한다. 하지만 그 감춤을 드러내는 것이 곧 '인공낙원'이다.) 곧 이 두 낱말 사이에서 작품은 작동한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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