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준 2017.04.04 17:58

김동규, <Look Look>: 타자의 시선에 사로잡힌 타자

김동규 안무, <Look Look> ©BAKI_2084 (이하 상동)

주렁주렁 꼬여 달린 옷들은 마치 오랜 동굴의 종유석들 같다. 이에 대한 최초의 물음은 마지막까지 어떤 해석을 유보하며 의미를 해명하지 않는다. 바닥 역시 옷가지들이 널브러져 있다. 얼굴 전체를 얇은 천으로 싸고 각기 다른 화려한 원색 또는 패턴을 지닌 옷 한 벌을 맞춰 입은 존재자들이 꿈틀거리듯 움직인다. 시선이 방향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과 같이 정위되지 못하는 신체 움직임은 자율적이지 못하고 구속된 익명의 존재자들의 삶을 가리킨다고 할 것이다. 작품의 주제와 형식을 결정짓는 얼굴을 가린 결정, 그리고 옷의 색과 무늬에 시선을 온통 뺏기게 한 결정, 그 대가는 그러나 개별 무용수들의 개별적 움직임들을 무화시키는 부정적 효과를 얻는다.

의도적으로 춤은 음악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로 출현하는데, 곧 춤은 음악 혹은 사운드에서 박자의 지정 이후 커다란 진폭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나타나고, 마주칠 시선도 향할 시선도 없이 진폭을 다하고 사라진다. 그런 식으로 부조리한 몸짓들이 여기저기서 동시적으로 출현하고, 어지럽게 그리고 무의미하게 무대를 장식한다. 피상성의 이미지들은 시선을 투과하지 못하는 가면 자체의 실재, 신체를 사로잡는 동시에 신체 움직임을 적당히 가리는 옷의 실재 자체로부터 비롯되며, 어떤 목소리의 상실 자체로 인해 분산되고 분해되는 구멍으로부터 나오는 숨들의 편재로 완성된다.

이 옷들이 위로 꺼지고 다시 옆으로 사라진 후 이들은 하나의 집단이 되는데, 이는 합창이 아닌 제창의 형식이다. 모두는 같은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시선으로 타악적 리듬에 원시적 공명 상태를 이룬다. 이는 앞선 편재된 무대에서 정제된 무대로의 주제에 맞는 자연스런 도약이라기보다는 형식 자체의 변화를 주기 위한 탈출로 여겨진다. 곧 주제적 숨 막힘을 형식적 숨 트임으로 바꾸는 셈인데, 이는 어쩌면 그 주제가 담보하고자 하는 것, 주제가 가리키는 것 자체의 위상을 작품 스스로 설명해 내지 못한 결과와 합치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현대인을 마스크 쓴 허상적 인간 유형으로 제시하고 이후 그들의 움직임을 도약을 감행하는 존재자들의 집단적 세레모니로 전환하는 공연은, 사실상 변환 없는 주제가 가진 공허의 지속에 형식적 눈가림만을 더한 듯한 인상을 준다.

타자의 시선에 사로잡힌 존재자들을 그린다면, 타자의 시선을 내파하거나 그로부터 탈출하는 식의 움직임이 발생해야 할 것인데, 그러한 움직임으로 보기에는 다소 손쉬운 형식적 전환을 모색한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시각적 화려함이 시종일관 너무 크게 눈을 지배하고 있던 것은 아닐까. 곧 관객이 보는 건 타자의 시선에 사로잡힌 타자의 시선에 사로잡힌 타자 자체이다. 우리 자신으로 소급되지 않는. 그러니 후반의 과정은 이미 괴물로 변해버린 존재자들의 어떤 환영적 의식들을 보는 것과 가깝다.

Eric Languet <I was admiring her through a series of precision cut mirrors>: 시선의 전도

Eric Languet <I was admiring her through a series of precision cut mirrors> ©BAKI_2084 (이하 상동)

무대를 좌우로 가르는 반투명 입체 큐브 공간은 뒤집힌 안과 바깥을 상정한다. 그곳은 관음증적으로 그 바깥을 통해 관찰되는 공간인 동시에 바깥을 관찰하는 공간이 되기 때문이다. 그 바깥, 무대로부터 더 먼 공간 바깥으로부터 공연은 시작되는데, 행진 음악에 맞춰 끊임없이 지나쳐 간다. 큐브 공간 중간 중간의 뼈대는 움직임을 일시적으로 감추는데, 이는 움직임의 끊어짐을 강조하기보다 오히려 그러한 이미지가 멈춤 이후 연속된다는 데 방점이 찍힌다. 이는 바깥이라기보다 공간에 가려져 있는 또 하나의 안이다. 본다는 것과 보이는 것 두 개의 변증법적 전개를 통해 공연은, 안과 바깥을 전도한다. 곧 그 공간 바깥에서 앞선 두 공간에서 반복되는 일상적인 몸짓들의 확장으로서 기호들과는 대립되는 형이상학적 기호로서 일반적인 춤의 동작들이 벌어질 때, 그것은 시선이 따라 붙지 않는 '실재'를 상정한다―실제 그들은 안의 흐름과 다르게 홀로 갑작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안의 사람들이 갖고 있던 어떤 공허, 공백을 드러낸다.

공간 안에서 바깥을 바라보기 시작하자 바깥에서도 안을 바라본다. 이는 다시 말해 공간 안의 시선이 우리 바깥의 시선이 아니라 우리 시선 자체일 수 있음을 깨워 준다. 관객의 시선의 확장인 바깥 관찰자들에 의해 들어오는 시선은 그 관찰자들을 통과하고, 다시 무대를 보는 우리 자신이 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두 명의 무용수는 공간 바깥에서 시작해 관객을 직접 향해 각기 다른 두 곡, '1,2,3,4', '떴다 그녀'를 연잇는데, 첫 번째 무대에서 양지연은 "엄마, 시작할게요!"라며 무대를 개인적인 데뷔와도 같은 떨림으로 인도한 후, 공간 여기저기로 시선을 흩뿌리며 멈칫 스텝을 딛고 다시 노래를 부르며 공간 전체를 쥐락펴락한다. 이러한 현재형의 시간들로 갑작스레 비약하는 장면들은, 일상의 박제화된 재현이 아닌, 일상의 시간 자체를 쓰는 것에 다름 아닌데, 한편으로는 무대 바깥의 시간, 순전히 무대를 상정하지 않는 무대 자체의 은밀한 무용수들의 삶을 엿본다는 느낌, 그러한 삶을 리서치한 끝에 다시 재현하는 데 성공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이에 대해 무대를 장난과 유희로 도배한다는 비판적 입장에 놓이기에는 안과 바깥의 전도를 끊임없이 변주한 끝에 그것이 놓이는 것이다. 이는 대중문화와 예술의 이분법적 경계를 깨뜨리려는 목적을 띤다기보다는 자연스레 그것이 지배하는 우리 의식 구조로 방향을 트는 바 있다. 곧 무용수들의 삶으로부터 추출된 결과 차원의 질문이다. 한편으로 외부 안무가의 접속이 LDP무용단 스스로에게 더 개방된 고찰을 가능케 하는 긍정적 기능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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