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준 2017.03.22 00:30

▲ 김희중 안무 <지평선 아래 솟구치는 것들> [사진 제공=컬처버스] (이하 상동)

3명의 사운드를 다루는 이들은 무대 뒤편에서 은폐되지 않고 오히려 디제잉 부스처럼 위치하며 따라서 작업은 움직임에 피처링을 하는 사운드적인 실험에 가깝다. 책을 쌓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그것을 허물 것을 전제한다. 이는 유기적 짜임의 구조를 이루는 대신 엔트로피적 발산의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면모에 의거한 것이기 때문으로, 강박적이고 제의적으로도 보이는 이런 '행위'는 안무의 체계적 질서를 보여주는 대신, 하나의 명령에 따른 프로그램화된 양상을 보인다. 그리고 이는 사운드 디제잉의 실험 자체의 단면으로 소급된다. 이 책을 펼칠 때 허약한 구조를 쌓고 허무는 일시적 건축 행위는 텍스트를 읽을 수 있는 이의 자동 기술적 의식의 흐름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어진다.

산발적이고 파편적인 텍스트는 사실상 내용을 상정하지 않고, 읽는다는 행위 자체 혹은 완전히 파악할 수 없는 언어적 긴장을 주는 측면에서 사용된다. 포스트모던한 기술로 보이는 이러한 책의 구성/해체 행위, 텍스트의 파편적 나열은 다시 사운드라는 외피 안에 용해된다. 사운드를 녹여내는 이들 중 한 명은 책을 읽는 행위를 지향성 마이크를 통해 수집해 사운드적 재료로서 재활용한다. 엄격히 말해 음악은 무용을 표현하지만, 무용수는 음악을 상호적으로 인식하는 것은 아니므로, 음악이 무용에 일방(향)적이다. 극장은 후반에 모든 조명이 올라가며 극장이라는 공간 자체에 대한 메타 의식을 정초하는데, 이러한 장 자체를 들여다본다는 의식 자체─그것은 사운드 디자이너가 그들을 지켜본다는 것으로 관객의 인식점을 대리한다─가 전적인 전환 대신 어느 정도 연장되는 일면이 있다고 하겠다. 이는 어쩌면 본다는 것 이상으로 듣는다는 측면에서 다시 이해 가능하다.

무용수들은 책을 쌓는 행위와 함께 수많은 종이를 허공에 던지곤 하는데, 사실상 이는 그 행위 이상으로 그 서걱거리는 종이가 공기와 만나 생기는 마찰음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그 책을 허무는 행위 역시도. 또한 조명이 내려갈 때의 장치음마저도. 따라서 이 공연은 스스로의 해체적 양식 자체를 철학과 세계상의 측면으로 소급되어 드러내기보다는, 곧 그것을 내용 자체로 드러내기보다 그것이 하나의 즉흥적 형식이자 사운드적 실험의 면모로서 당위성을 획득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분절되는 수많은 장들은 모두 상이한 이름을 갖고 있지만, 그것이 복잡한 내용의 결을 이루기 위한 정교한 독해가 필요하기보다 '솟구침', '흐트러짐' 등의 물질적 형태의 변화를 포함해 그것을 사운드로 포착/연장해 내는 사운드의 흐름 자체로 작품에 몰입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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