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준 2017.03.21 23:27

 

▲ 《세 개의 쉬운 비디오 자습서로 보는 삶》 전시 전경, 아트선재센터, 2017, 사진: 김상태 [사진 제공=아트선재센터] (이하 상동)

시각적 제스처로 한정 짓기에는 화면 안 글자의 폰트, 형태, 배치 들의 궤적은 지연되지 않으므로 일종의 시간예술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화면 밖 공간을 채우는 재즈 풍의 연주는 그것과 싱크를 맞추며 화면의 전환과 시각적 리듬에 더해 끊임없는 자극을 준다.

사실상 언어의 장르적 특질은 1층의 <불행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다(ALL UNHAPPY FAMILIES ARE ALIKE)>가 주로 대화체로 구성된 인터넷 소설의 외양으로 판소리 사설을 떠올리게 하는 반면, 2층의 <삼성의 뜻은 죽음을 말하는 것이다(SAMSUNG MEANS TO DIE)>는 한국 사회의 대타자적인 기호이자 동시에 모든 고급적이고도 매력적인 장소로서 '삼성'―삼성이라는 고유명사에 대한 직접적 언급으로서 삼성이라는 상징 자본의 고유한 위치를 비판적이고 적대적으로 두기보다, 비유적으로 형상화하며 한국 사회의 굴절된 이상(異常)적 이상(理想)이 자리하는 잠재화된 세계를 소환하는 장소―으로 소급되는, 삼성공화국과 불특정 개인의 관계를 잠언처럼 병렬시켜 나간다.

여기서 삼성은 익숙하고 대표적인 기호로서 소환되었고 삼성을 가리키는 동시에 삼성을 포함하며 삼성과 같은 어떤 기업/권력/의지를 가리키며 장영혜중공업은 작품의 텍스트를 통해 그러한 잠재태로서의 삼성을 형상화하는 가운데 거꾸로 삼성을 우의적으로 가리키게 된다. 따라서 어떤 이들이 염려하거나 지적하듯 장영혜중공업이 삼성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것은 아니며 알레고리로서 다루는 것이다.

한편 3층의 <머리를 검게 물들이는 정치인들―무엇을 감추나?(POLITICIANS WHO DYE THEIR HAIR―WHAT ARE THEY HIDING?)>는 검은 머리를 물들임으로써 시민들에게 자신의 이미지를 각인하며 정치를 하는 정치인에 대한 비판이 개인적 화자의 서술로 행해진다.

<삼성의 뜻은 죽음을 말하는 것이다>에서, "삼성의 뜻은 죽음을 말하는 것이다"와 같은 구문은 생략적이고 모호하다. 주어로부터는 삼성이라는 주체의 뜻/의지와 삼성에 대한 뜻/의미가, 술어로부터는 영향력을 띤 말과 의미로서 말, 곧 정의 차원에서의 말이 각각 연역된다. 후자의 결합으로써 이 문장은 직접적인 비판을 피해가는 한편 죽음이라는 비의적이고 동시에 끝이라는 측면에서의 명확한 기호라는 커다란 범주 아래, 전자의 결합을 포괄하며 그것을 구체적인 일부분으로 대상화하는 가운데 의미를 확정짓지 않으며 확장된다.

사실상 이러한 표현은 시적인 언어이며, 동시에 정치적 현재성을 담지한다. 무엇보다 언어가 갖는 힘은 자유로운 유희성과 재미이며, 구체적인 현실 세계 대신 마치 아무 말이나 뱉어내는 캐릭터-화자를 형성하고, 음악을 통해 리듬을, 시각적 전환을 통해 움직임을 구성한다. 이것은 일반적인 극은 아닌 반면, 극적으로 펼쳐진다고 할 것이다. 곧 관객을 (의자 없이) 고정시키고 공간 안 배치들 대신 시간의 흐름을 제시하며 시청각의 배치를 통해 공간에 대한 체험을 만든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볼 부분 혹은 문제는, 여기서 아직 다루지 않았지만, 장영혜중공업이 가진 연극으로서의 매체적 확장성의 특질이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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