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준 2016.08.09 11:09

<마노맨Manoman>(사이먼 카트라이트Simon CARTWRIGHT 감독) [사진 제공=부천판타스틱영화제(이하 상동)]


'부천 초이스: 단편'에서 단연 돋보인 건 <마노맨Manoman>(사이먼 카트라이트Simon CARTWRIGHT 감독)으로, 이는 마노맨의 중반 이후의 등장부터의 빠른 전개와 긴 코와 플라스틱 질감의 피부 등의 특이한 신체 재현과 손목에 건 조종 막대가 그대로 드러나는 구조의 특색 있는 인형들의 마감과 그것을 생생하게 비추는 카메라 때문만은 아닌데, 무엇보다 주인공에게 드러나며 주인공을 바라보는, 주인공의 또 다른 자아로 나타나는 기이한 마노맨이란 존재의 타자성이 인상적이기 때문이다. 그의 몸은 벌거벗음과 불구성-지나치게 짧은 다리와 인형의 특이한 신체 구조 자체를 벌거벗음 자체로 드러나게 하는-의 신체처럼 보이나 그는 타자의 시선에 지배당하지 않고, 자유로우며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권능을 가졌으며, 빈약한 신체에 비해 폭포수와 같은 엄청난 소변 량을 일시에 뿜어낼 수 있다. 불특정한 존재들의 외침으로 시리즈물의 탄생을 알리는 듯한 마지막 장면에서처럼, 사람들의 (성대라는 구멍을 타고 진동하며 솟아오르는) 외침을 만드는, 인간(man)과 인간(man) 사이라는, 비인간의 존재로서, 인간들 사이의 '구멍(o)'으로 존재하는 듯한 그는 실제 인간의 잠재된 욕동(속)으로부터 자리하고, 변기 구멍으로부터 튀어나온다. 금기를 적용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는 상상적 대상인 반면, 상징계적 금기와 부딪치며 그것을 격파하는 가운데 윤리의 자리로 주인공을 돌아 세운다. 주인공이 하나의 불특정한 대상으로 잊히며 마노맨과의 불특정한 사람들 간의 유대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외침으로 동기화된다. 결국 끝없는 마노맨의 금기 없는 여정이 '심리 치료'를 받고자 하는 현대인의 또 다른 존재 유형과 합작해 펼쳐질 예정인 것이다. 현실의 모든 것을 초월한 존재인 마노맨이 추동한 금기 깨기의 자유로부터 윤리적 존재로서 죽음의 결단을 내리는 주인공의 불행한 결말 역시 마련된다.


<윌리 빙엄의 경우The Disappearance of Willie Bingham>(맷 리차드Matt RICHARDS 감독)

 

<윌리 빙엄의 경우The Disappearance of Willie Bingham>(맷 리차드Matt RICHARDS 감독)는 영어로 된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것인데, 사형 대신 자신의 딸을 강간하고 살해한 흉악범은, 그에 대한 피해자 가족의 분노가 사그라질 때까지 중단 없이 하나씩 신체 일부를 잘라내는 새롭게 도입된 형벌 제도의 첫 번째 사례가 된다. 팔과 다리를 하나씩 잘라내고, 레이저로 피부를 지지고, 혀의 일부까지 잘라내는 수술 결정을 내리는 피해자 아버지의 모습은 비정하고, 흉악범에 대한 동정을 불러낸다. 그 전에 처음 비주얼적 충격을 안기는 것에서부터 계속된 수술과 그 결과에 대한 피로가 한편으론 둔감과 지루함으로도 변하는 가운데, 창문 바깥에서 변하지 않는, 곧 철회 없는 어김없는 수술 동의 가운데 수술에 대한 윤리적 외면과 쾌감이 동반된 구경의 피해자 아버지의 얼굴이 공포와 두려움으로 휩싸인 범죄자, 곧 '피해자'의 얼굴이 대조되는데, 그에겐 마취와 법적 테두리 안에(서 이러한 수술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만이 구원의 영역인데, 무력한 타자의 모습은 거리 두기의 알 수 없는 기이한 쾌락과 슬픔이 겹쳐져 있다. 곧 그를 유리창 너머의 안전지대에 위치한 피해자 가족의 바라보기의 대상적 측면에서 지시가 하달된 수술 이후, 문제아들이 많은 빈민층 집단의 학교 등에 불려 다니며 구경거리가 되는 것, 그리고 법에서 안락하고 또 그것에 침몰되어 가는 한 인간의 무력함을 말할 수 없는 비애로 현상하는 것을 넘어 자조 어린 인간의 굴곡과 전후 관계로 연결 짓고 법의 타락(과 윤리의 침몰)을 그의 시선과 얼굴 바깥으로 그의 육체와 인접하며 (비)인간적으로 현상한다.


<미워도 다시 한 방The Bathtub>(팀 엘리치Tim ELLRICH 감독)

 

<미워도 다시 한 방The Bathtub>(팀 엘리치Tim ELLRICH 감독)은 하나의 카메라가 세 형제의 욕조 속에서 사진 찍기를 위해 설치돼 원테이크 촬영으로 가, 현장성을 다른 이의 매개 없이 반영하는, 자기 지시적인 카메라의 특이한 촬영 형식이 전제된다. 따라서 카메라 위치를 바꾸거나 타이머를 누르러 갈 때 동생의 존재는 카메라 뒤로 가려지며 소리로만 존재하게 된다. 어머니를 위해 어릴 적 찍었던 사진의 포즈를 다시 취해야 하는 가운데, 서로 다른, 가령 정치인이라 체면과 위신을 지켜야 하는-이런 유의 영상이 드러나서는 안 되는- 큰 형과 아옹다옹하며 촬영에 성공하며, 옛날 사진과 비교되어 찍힌 사진이 나오는 것까지 형식적 차원을 넘어 내용적 리얼리티까지를 담보한다. 그럼에도 이는 가정된 리얼리티이고, 모두 섭외된 관계없는 연기자들이다.


<목소리Voiceless>(데이빗 유로스David ULOTH 감독)

 

<목소리Voiceless>(데이빗 유로스David ULOTH 감독)는 도축장에서 일하는 에드가가 짝사랑하는 자넷에게 프러포즈하기로 하지만, 목소리가 돼지 목소리와 바꿔치기 되어 에드가로부터 외면당하게 된다. 흑백 톤의 전체 영상에서, 도축장의 장면들은 그가 헤드폰으로 듣고 따라 부르는 오페라 음악에 따라 심미적으로 각색되고, 차이고 또 하급 직원으로 노래를 따라 부르다 가격 당하는 등의 비애 섞인 인생의 그가 상상하는 오페라는, 그 비애가 육화되어 오페라의 내용 자체로 충실히 기능한다. 곧 그 주변은 그의 예술적 지각에 의해 심미화되고 구원의 배경으로 작동하게 된다. '목소리'는 잃어버리는 것이 아닌, 교환되는 것이며, 이로써 실연당한 다른 직원과 아름다운 아리아를 구현하게 된다. 목소리, 음악은 절대적인 매체, 예술 작품이 된다.

 

<구름 위의 소년Hobart>(하즈날카 하르사니Hajnalka HARSANYI 감독)


<정신과 시간의 방>(김민재 감독)

 

'판타스틱 단편 걸작선 5'에서 <구름 위의 소년Hobart>(하즈날카 하르사니Hajnalka HARSANYI 감독)은 실사와 같은, 가령 사냥꾼에 의해 쫓기는 돼지의 휘날리는 털이나 구름의 질감 등이 실제처럼 현상되는데, 이와 같은 실사적 재현의 기술은 추적이라는 속도로 구가되는 단일하고 단순한 스토리 전개가 긴장과 끝없이 펼쳐진 공간에 대한 입체적 감각을 주는 것으로 이어진다. <정신과 시간의 방>(김민재 감독)은 '드래곤볼'에서 등장하는 '정신과 시간의 방'의 관념을 실제로 구현하는데, 한 스승을 만나 복싱을 배워 싸움의 능력자로 거듭나는 주인공이, 나중에 시간이 세상보다 빠른 속도로 전개되는 방의 존재를 알지만 거기 문이 닫히게 되는데, 이러한 달콤하고도 무서운 상상의 세계가 정신 이상자의 머릿속에서 구현된 것이라는 결말은 다소 허무하다. 현실을 지시하기보다 그 상상의 자유로움에 기대 즐거움을 주는 작업인 동시에, 그 결말이 엉뚱한 반전 정도로 비약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깃덩어리We Are the Flesh)>(에밀리아노 로챠 민테르Emiliano ROCHA MINTER 감독)

 

'금기를 깬' 혹은 '금기를 넘어선' 영화제에서도 특별 구역으로 묶인 '금지구역' 섹션에서 열린, <우리는 고깃덩어리We Are the Flesh>(에밀리아노 로챠 민테르Emiliano ROCHA MINTER 감독)는 그로테스크한 주인공과 스토리, 전체적으로 은유로만 존재하는 듯한 불투명한 세계의 현실에 잔혹한 장면과 자위, 섹스 등이 가감 없이 제시된다. 무언가를 비밀스럽게 만드는 정체 모를 한 남자의 집에 유랑하는 남매가 들어와 잠을 구걸하고 날계란만 먹으며 그 공간 안에 테이프로 싸며 동굴을 만드는 작업을 함께 하게 된다. 그러한 비밀 '궁전'은 단체 섹스와 죽음을 위한 환락과 제의의 공간이 된다. 근친상간을 종용하며 본능과 섹스의 대상의 차원에서 기존의 관계를 해체하는 룰을 발명하거나 우연히 들어간 군인의 목을 따며 그의 죽음을 모두의 삶을 위한 것으로, 그 자신의 개체적 죽음이 아닌 것으로 승화하는 주인공의 교설은, 등장인물들에게 법 자체로 근거하는 원시적 아버지이자 그의 욕망을 타인의 풀어헤쳐진 욕망의 성취로서 광란의 파티가 이뤄지는 것으로 매개하는 트릭스터적 면모가 결합된, 곧 영화 내의 법과 규칙, 그로 인한 공간의 구성을 만드는 근거이자 그들의 욕망을 주조하고 매개하는 비주체적 매개자로 자리한다. 곧 마지막에 모두 잠든 혹은 죽은 상황에서 이 환상의 세계, 세트를 깨고 나오는 한 인물의 시점에서 그에게 미치는 현실세계의 시선들과 맞부딪히게 되는데, 그러한 이물감은 앞의 세계를 증명할 수 없는 실재로 치환한다.

 

대런 아로노프스키Darren ARONOFSKY의 <레퀴엠Requiem for a Dream>

 

3일 정도의 행군만을 감행했고, 단편들을 위주로 감상했고, 그중에 대개 주목할 만한 작품이나 수상의 영예를 안은 작품이 없다는 점에서 이번 영화제에 대해 정의내리기는 힘들고, 다만 가장 인상 깊게 본 <마노맨>이 단편 작품상을 받아 장편과 달리 단편에서는 역시 많은 공을 들이고 금기(현실/상징계)를 벗어나면서 그 금기(윤리)로 돌아오게 된다는 점에서, 영화제 작품의 특성을 어느 정도 잘 나타내면서 그 과정에서 재기발랄하면서도 가볍지만은 않은 작품 세계, 거기에다 뛰어난 인형 제작의 마감과 촬영 시점 등이 한층 영화를 빛낸다. 5회 개막작으로, '다시 보는 판타스틱 걸작선: 시간을 달리는 BIFAN'의 일환으로 다시 상영된 대런 아로노프스키Darren ARONOFSKY의 <레퀴엠Requiem for a Dream> 역시 마약이라는 쾌락과 그 방종에 대한 대가가 주는 금기의 선연한 실재-가령 주인공의 잘려나간 팔뚝으로 드러나는-를 보여주는 한편, 그에 더해 관객에게 속도의 마약을 주사하는데, 마약하는 주인공 일당을 보여주는 신과 살 빼는 약을 복용하며 방송국의 '셀레브러티'로 서게 되는 장면을 상상하는 주인공 엄마의 평행되는 신이 속도를 내며 마구 달려가는 신(scene)들의 홍수가 주는 짜릿한 긴장은 역시 인상적이었다. 금기를 깬다기보다 그것에 도전하고 응전하는 미션 차원에서 부천국제영화제는 여전히 인상적인 행보를 걷고 있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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