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준 2016.04.07 07:21

 

<셰익스피어니즈유>_공연 ⓒBilly Cowie

빌리 코위의 공연은 사실 하나의 공연 형식으로 엄밀히 파악되기보다는 하나의 공연을 만드는 과정의 방법론 자체에 더 방점이 찍힌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는 (유럽 컨템퍼러리의) 좋은 작품을 들여오(고 이로 인해 예술 담론도 함께 주장/선언하)는 데 방점이 찍힌 초기 페스티벌 봄에서 어떤 작품을 콘텐츠화하는 데 있어 국내 예술 환경과 결부해서 그러한 작품의 살아남기 자체를 시험/실현하는 방식 곧 마치 지금 페스티벌 봄의 전혀 다른 기조가 징후적으로 이 작품에서 체현된다고나 할까.

<아트 오브 무브먼트는 안무에 대한 사유 기제를 열어주는 식의 그야말로 안무 노트 꼭지들을 그대로 읽어주고 나서 그 움직임을 3D 영상과 동시적으로 직접 무용수 한 명이 펼쳐내는데, 이는 매체 표현의 상이함 혹은 유사성을 보여주는 기술적 시현의 측면, 또는 매체의 형식적 접근의 새로움으로 소급되기보다는, 그리고 나아가 이 작품이 의도적으로 노출하는("이런 이미지를 믿다니.") '이미지' 자체에 대한 물음을 표한다기보다는 한 뼘의 공간에서 실제 움직임이 재현되고 있음 자체를, 구체적으로 3D 영상 시작 전에 어김없이 영상 크기와 맞춰 자신이 섰던 큐빅과 함께 사라지는 무용수의 자취를 어둠 속에서 완전히 감출 수 없는 상황에서 이미 프로덕션된 부분을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2배수의 움직임과 실감나는 배경과 함께) 가능하게 할 수 있음이 이 작품의 주요한 지점으로 역설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 아닐까. 동시에 (고스란히 그 작품을 들여오는 것 곧 또 다른 번역적 재현인 초기 페스티벌 봄이 아닌 한국적 문맥과 역량이 들어간) 국제 교류의 긴밀한 협업을 달성하면서.

공고한 이미지와 실제의 차이가 크지 않음을 확인하는 것에 더해, 말 이후에 작동하는 움직임은 사실상 워크숍 위주의 몸짓 만들기에 대한 메타적 인지의 성취로만 가늠되는데, 그것은 곧 하나의 재현에 머문다(그다지 생생하지 않는데 무용수들은 이미지와 합치되어야 하는 한마디로 이미지 자체가 되어야 하는 피그말리온에 상응하게 된다). 말과 움직임이 교차하며 만드는 움직임은 <탱고 오브 솔리튜드>라는 온전한 3D 영상으로만 구현되는데, 거기엔 안무 노트와도 같은 생각의 흐름과 어떤 형태. 수식 같은 것들이 분필로 빼곡히 적힌 칠판을 배경으로 숫자를 세는 내레이션에 맞춰 움직임이 분기하며 표현된다. 반면 <다크레인>은 미미한 신체 움직임에 동적 이미지가 입히며 입체화되는데 여기서 신체는 이미지에 포섭된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인터미션 이후 3D 영상을 벗어나, 콘텐츠 제작 과정 자체가 본격화되는 2부 <셰익스피어 니즈 유>는 셰익스피어 역인 김C의 얼굴이 클로즈업된 가상의 화상 전화를 가정하고, 앞에 출연했던 두 무용수 박명훈과 한류리의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대사를 언급하거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작품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으로 전개된다. 이는 말 이후 움직임의 재현이 뒤따르던 것과 같이, '만듦' 자체에 대한 강조가 있다. 예술적 돌파구는 먼 과거/미래로부터의 예술가와의 교류로 인해 찾아진다. 어쩌면 페스티벌 봄의 작품을 만드는 방식 자체가 극으로 펼쳐진다고 하겠다. 여기서 김C는 셰익스피어를 입은 빌리 코위라 할 수 있겠다.

두 무용수는 미리 녹음된 말에 립싱크를 하는데, 곧 소리-이미지에 종속되는 것과 같다. 사실상 신진 예술가의 위치를 표상하는 두 무용수의 좌충우돌의 시도에 '기계장치의 이미지/말'이 그것을 해결해주는 과정의 서사는 그 자체로 많이 성글지만, 사실상 셰익스피어가 아닌 빌리 코위의 말이라는 점에서 타자적 방식으로 주어주는-한편으로 무지한 예술가로 표상된 두 무용수라는 타자적 재현의 방식과 함께- 일방적 차원에서 서사가 쓰이고 있음이 궁극적인 문제로 보인다. 이는 물론 이미지/소리에 종속되는 방식에서 출현하는 신체의 궁핍함을 완전히 해소시켜주지도 못한다.

이번 작품은 페스티벌 봄이 (교류를 통해) 독자적으로 완성한, 페스티벌 봄의 운영/작동 방식 자체가 고스란히 투영된, 페스티벌 봄의 진통과 시도 자체가 과도기적으로 드러나는 작품이 아닐까. 그래서 완성도를 논하기 전에, 이미 아주 다른 '페스티벌 봄'을 목도하는 지난 관객의 낯섦은 크게 봐서 '관객에 대한 실험'-그것이 확장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자체의 한 부분으로 봐야 할 것인지도 모르겠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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