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준 2016.01.29 02:00


▲ 조용진 안무 <안무사용법> 공연 모습 [사진 제공=국립무용단] (이하 상동)


'기본'을 '현재(라는 의식)'에 출현시키고 음악에 적용하며, 또 춤을 추는 과정 자체 안에서 발현되게 하는 과정으로서 안무를 '사용'하는 법은 주로 따라 하기라는 중간 단계를 거친다. 선글라스를 낀, 표정을 소거한 존재들로부터 상호 닮음이라는 기초적인 동작들이 나오는 긴 인트로 쯤을 지나, '기본'은 매일 익히고 반복 숙달하여 이미 몸에 익은 것으로 기호화되며, 이는 중간 중간 출현하며 그 사이를 메우는 따라서 그것을 분절하는 따라 하기를 비롯한 수많은 동작들이 존재하고, 또는 '기본'을 한 사람이 수행하는 가운데 다른 한 사람의 빈 시간은, 상대방의 몸짓을 잇고 자신의 몸짓으로 기본을 궁구하고 새로운 동작들로 그것을 연장하는 과정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 전체를 감싸는 메트로놈의 단속적인 리듬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동시에 그 사이에 쇳소리의 잔향이 섞여들며 증기처럼 반향을 일으키며 치솟지 않고 계속 어떤 에너지 자체를 이어 가는 사운드는, 이 모든 몸짓들을 차이와 반복의 서사로 갈음짓는 끊임없는 해체와 재구성의 조합이라는 유희로 구성한다. 

 

따라 하기에서 가령 뒤로 큰 걸음으로 뛰기를 하는 가운데, 허공의 체류를 움직임으로 보존하는 몸짓 정도가 인상적이며, 아무래도 맞지 않는 옷-나아가 춤 자체에 대한 시각 자체를 규정하는-과 기본의 연장이기보다 기본의 상정과 그것의 절합적인 이어짐은, 숨이나 어떤 특정한 흐름 안으로 가져가는 것 대신, 끊임없는 시작의 기점이 마련됨은, 이 둘의 채팅 창의 대화를 실시간적으로 재현하는 스크린 이후에 두 사람의 한국무용을 하는 이의 정체성으로 투과되고 수렴되며 고착되는 가운데, 노동의 서사쯤으로 의미화된다[각주:1]. 곧 어떤 특징적인 몸짓들이 그다지 많지 않다. 따라 하기는 이 와중에 가장 기초적인 움직임의 매개로 반복되지만 점점 힘을 잃어버린다. 곧 기본을 도출하는 과제가 가장 큰 무게중심으로 자리하게 되는데, 기본을 유려하게 추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지금 시도되고 있다는 것 정도가 중요한 지점의 수행성을 띠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비슷한 음가의 조합에서, 살풀이를 한 명이 추고 장구로 장단을 맞추는 과정에서, 장구에 입히는 전자 사운드가 단속적으로 출현하며 조명을 옆으로 순간 옮기는 게 반복되다 살풀이 천을 장구 치는 이의 얼굴에 던져버림으로써, 디제이가 주도적으로 이끄는 리듬에서 둘은 춤을 추게 된다. 이러한 폭력은 '한국'무용이라는 것에 대한 억압 기제를 이미 고백한 이후에 펼쳐진 것이라는 점에서, 그 무게에 눌리지 않겠다는 의지와 도발, 자유의 외침 등이 담겨 있는 것 같지만, 다소 불편하게 다가오는 게 사실인데, '한국'무용이라는 의미 지형 자체를 전복하는 움직임이라기보다 일차원적인 저항쯤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디제잉에 맞춰 추는 춤 자체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데, 기계적인 리듬의 수행성에 유려하고 더디며 무게중심을 잡는 몸짓들 자체가 그 음악에서 벗어나거나 음악에 맞아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로써 맞지 않는 옷과 음악은 전유되기보다 혼재되며 '퓨전'적 기로에 놓인다. 아니 하나의 시도 자체의 어색함쯤으로 수렴된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1. 사실 그 전에 관객 자체를 상정하는 프로그램으로 불특정한 관객 한 명 한 명을 카메라로 줌 인 해서 그의 반응을 폭력적으로 잡아내는 과정이 있는데, 이로써 관객과 퍼포머의 구도를 명확하게 규정짓고 이후 박수의 과정으로 관객을 몰아가게 되는 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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