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준 2015.08.26 16:59

장소 특정적인 작업과 공간 임대적 작업 사이의 어떤 파생 지점들


‘동송’이란 원래의 지명을 새로운 동음이의어로서의 의미를 부여하며 재전유한 것으로, 함께 보낸다는 뜻이다. 여기서 그 주체를 무엇으로 상정하느냐는, 언뜻 커뮤니티 아트로도 보이는 이번 프로젝트를 그러한 기준 아래 가늠해 볼 수 있으리라 보이는데, 곧 그 주체가 ‘작가들’이며 그 과정상의 자의적 경험을 (충족시키는 것으로 충분함을) 의미하는지 혹은 마을 전체로 확장된 어떤 이상적 개념을 상정하는지가 이를 통해 드러난다. 한편으로 그 ‘보낸다’는 것이 일종의 매체적 전달 과정을 상정하며 따라서 어떤 메시지를 가정한다면, DMZ를 함축한 동송이라는 지역에 보내는 메시지를 또한 가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 마디로 ‘함께’라는 이상적인 의미는, (마을 안) 작가‘들’의 일시적이고 임시적인 커뮤니티의 경험(내지는 마을에 포개진 작가들이라는 유기체적 공동체의 공속을)을 이미 지났거나 도래할 무엇으로 가정하며 그 안에 어떤 형식과 내용을 지우는 가운데, 다시 ‘동송’이란 지역 자체로 회귀한다. 여기서 ‘함께’의 주체는 DMZ의 먼 미래에 대한 축원에 이르기 전에, 아무래도 마을이라는 타자를 가정하며 일시적인 (커뮤니티 아트에 임하는 작가) 주체의 이상적 형태를 가정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 일시성 속에서 ‘함께’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역설적으로 중요해질 것이다.


이번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에서 초점이 맞춰지는 부분은, 프로젝트가 마을과 결합하는 방식으로, 이는 분산된 마을 곳곳에 임시로 작품의 거주를 허락받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엄밀히 장소 특정적인 작업이 아니라 공간 임대적 작업의 성격이 강한 작품이 많으며 작품의 질적 편차가 큰 편이다. 분산된 초점은 임의적 접속의 느슨함과 고른 분배라는 어떤 평화적 제스처를 취하는 편으로, 이러한 너른 작품들과의 만남은 투어 형식을 통하지 않으면, 그 특정적인 관객은 형성되기 어려우며, 대부분의 관객은 일상에 부여된 기괴한 보충물로서의 작품의 소소한 면면들을 체감하는 마을 사람들의 시선으로 부분부분 동기화된 채 잠재하게 될 것이다(그렇지만 그것이 문제가 되는가?). 곧 일상 안에 녹아나며 장소 특정적이기보다 장소 첨가적이며 부가적인 측면에서 작가들의 일시적 작업은 어떤 식으로 자신의 기존 작업의 연장선상과 연계된 성격을 가질 수 있는가의 질문은-장소 특정적 작업이 여전히 유효한가에 대한 질문을 벼리는 것과 함께- 공간 선택에 대한 고민과 그 과정에서 출현하는 대화의 흐름과 맞물려 도출되어야 할 것으로, 이러한 부분에서 동송이 가리키는 ‘함께’, 곧 ‘커뮤니티’는 작가 ‘들’이 아닌 작가와 마을의 측면에서 어느 정도 정의될 수밖에 없는 부분일 것이다-여기서 아마도 주체의 이상적 전령으로서 보다 강조된 듯 보이는 앞서 ‘동송’의 의미는 그 주체가 뒤섞이고 깨지는 과정을 겪을 수밖에 없음이 드러난다. 


김진주, 약속한 시간 (사진 제공=아트선재센터)


장소 특정적이기보다 공간 기생적 혹은 공간 임대적인 작업들 중에서 배민경의 <결들의 소식>은 고정된 공간을 내파하며 자유로운 도보의 형식으로 작가의 확장된 신체를 유동적인 장소적 기록으로 바꾸며 화이트큐브로부터의 도약을 감행하는데, 그 결과 작가는 신체의 확장적 테크놀로지라기보다 고르지 않은 땅의 마찰이 고스란히 그 장치에 전달되어 속도를 제한해야 하는 제약의 테크놀로지 안에 갇혀 장소를 세세하게 나누며 경험하는 불편한 이방인에 가까워지는 듯 보인다. 그 장치에 속한 물은 세계를 반영하기보다는 그리고 그 소음은 그 장치에 함입되며 기록되기보다-이러한 기록은 이상적인 차원에 가깝다- 오브제(를 설치로 변형하여 그)에 속도를 가하는 것의 어려움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것에 가깝다 보였다. 김소영 작가와 심보선 시인/사회학자와의 협업 <동송삼방>은 철원성당에 위치해 호롱불 같은 투명한 매체에 낙서와도 같은 텍스트와 드로잉이 분배된 작업이었는데, 솟은 구조물이 자리 잡고 있는 모양이 장소 특정적인 측면에서 하나의 미니멀리즘적 도상으로 튀어나와 있었지만 가까이에서 그것에 다가갔을 때 친밀하고도 완전히 만지기에는 어떤 거리감을 주고 있었고, 그 내용은 이미 자리해온 공공 낙서를 하나의 프레임으로 박제한 듯한 인상을 주었다. 곧 심미적 구조물을 낙서처럼 보이게 만든 것이다. 


김진주 작가의 작업은 이곳 지역 군인들이 휴대폰을 주로 맡기는 용도로 사용되는 사설 보관소를 활용하여 그 고정된 장소와 곧 그 장소 바깥으로 옮겨가는 수많은 이들과의 거리를 매개하는 측면에서, 일종의 서비스 차원의 문자를 사용자 각각에게 보내는 작업을 한다. 이곳은 임시적 보관소이자 유동적이며 결코 영원히 쌓이지 않는 비-아카이브의 전형인 것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약속을 일시적이고 임시적인 차원으로 상정한 것은 유효적절하다 보인다. 곧 비무장지대를 두고 남북 간의 법적 협약을 사적 영토로 옮겨와 그에 물음을 던지는 식으로 보내는 문자들에는 비무장지대에서의 ‘적대 행위’를 하지 못하게 되어 있음에 대한 물음 등이 담기게 된다. 보관함으로부터의 목소리(문자)는 약속이 이뤄지는 허구적 장소로서 이 장소를 바꾸고, 이상적 장소로 매개되는 이 장소는 (작가라는 이름을 지우는 가운데) 허구적 대리인의 음성에 따라 관객과의 관계를 파생시키게 된다. 각각의 약속은 16개로 유형화되어 있는 문자들이다. 사실상 장소를 그곳에 두었지만 실제 다른 장소적 물음 혹은 실천 들을 제시·지시하는 작업은 강신대 작가의 <#DMZ>도 해당되며, 이는 ‘웹 크롤러’라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변형하여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DMZ와 관련 검색어가 입력됐을 때 구글에서 나온 이미지들을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하여 끊임없이 변형되는 작업이다. 인터넷이라는 하나의 세계에 접속하는 환경이 휴대폰 대리점이라는 하나의 장소에서 과잉 축적·변형되고 있는 것이다. 


최진욱 작가의 <노동당사> 연작에서 초록·파랑 등으로 하나의 톤으로 조율된 그림들은 마치 그 자체로 하나의 설치인 듯 하나의 이미지로 즉각 다가오는 효과를 안기는데, 그 색으로 인해 어떤 시간과 공간과의 괴리를 극대화하는 측면이 있다. 같은 공간에서 이해민선 작가의 <노동당사_네모난 돌과 초록 풀>은 노동당사 사진에 화학약품을 가하여 녹여내면서 그린 작업으로, 기록이 수행으로 인해 (견고한 이미지에 가해지는) 덧없는 융합이 하나의 역사 시간성의 시점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인상 깊은 작업이었다. 김도희 작가의 <무한철책>은 철원 해안 철책 길에 바짝 작가가 붙어 찍은 영상을 데칼코마니로 이중 이미지를 만들어, 시점을 지닌 이를 감싼 채 끝없이 펼쳐진 소실점으로 보이는 기괴한 이미지 체험을 만든다. 어떤 경계를 좁고도 끝나지 않는 동시에 안락한 어떤 경험으로 만든 점은, 남북의 대칭 이미지를 하나의 자아라는 장소로 치환해 타자를 우리 자신으로 만드는 작가의 무의식적 전경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강현아 작가의 <동송DMZ생태관광>은 망원경을 통해 밭 너머 건물의 작은 그림들을 보게 하는 작업으로, 이쪽과 저쪽의 경계를 상정하면서 관찰자적 시점의 불완전성을 극대화한다. 망원경은 그림을 확장·변형하지만 철망(철책선)을 보이지 않게 만든다는 점에서, 경계를 심미적 경험으로 치환하면서 완전히 은폐하지 않고(곧 망원경을 보면서 좁은 시야에 갇히게 만들면서) 저쪽의 세계를 기이한 시선의 발생으로 옮겨 놓는다. 정소영 작가와 김동세 건축가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터미널: 가깝고 먼>에서 철원성당에 설치된 정소영 작가의 작업은 주차장 공터에 놓인 툭 튀어나온 구조물이라는 점에서 미니멀리즘적으로 드러나는 장소 특정적인 작업인데, 사방의 중앙에 놓인 일종의 안테나이자 도피처쯤으로 보인다. 곧 이곳 DMZ라는 장소를 무의식적으로 경계하고 숨어야 할 두려움 따위가 무의식적 기제로 해석하며 실제 그것은 몸에 따라 접고 바꿀 수 있는 디자인적 사물로 치환된 가운데 은폐되어 있는 작업으로 보인다. 강희정 작가의 작업은 철원성당 내에 위치하는데, 마치 부식되어 가는 책 앞에 놓인 얇은 흰 장갑이 사료 같은 느낌도 준다. 하나의 책 안에 이곳과 관련해 작업을 시작하는 과정에서 모은 여러 책들이나 텍스트들의 구문, 페이지를 오려 붙여 모은 아카이브로 드러내는 작업이다. 


실제 이곳의 또 다른 관객이라 상정되는 군인을 대상으로 한 작업들도 있는데, 정원연 작가의 <군심환>은 성심약국에서 군인들이 겪는 갖가지 신체 이상적 증상들과 그에 대한 약 조제법을 기록한 책과 함께 검은 곽에 담긴 약을 판매하는 퍼포먼스를 벌이는 작업인데, 모든 게 플라시보 효과 이외에는 완벽한 처방이 될 수 없는 가상의 개념 성취에 가깝고 커뮤니티 아트적인 실제 치유 효과와 대화를 유도하며 만들어진 작업은 아니었다. 한편 필승체육사라는 군인들이 제대할 때 기념으로 군복에 오버로크를 쳐주는 일을 주로 하는 장소에서, DMZ에 거주한다는 곧 거기서 발견되곤 한다는 또는 그렇게 가정·상상되는 이야기 속 동물들을 캐릭터로 치환해 이를 오버로크로 달 수 있는 패치 형식의 작업들을 실제 판매로 이어지게끔 만들었다. 가격이 조금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는 이 작업들이 현대 동시대 미술 작가의 작업으로 예술적 가치가 더해졌다는 것을 설명하지 않고(아마 그것이 이 작업, 아니 예술의 상품 가치를 실험해보는 측면이 될 텐데, 만약 그렇다면 상품으로서 예술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의 물음이 다시 생겨난다) 그것이 뭔가 이채롭다는 측면에서 그것에 끌려 구입할 수 있느냐의 여지를 타진해볼 때의 의문이다. 곧 상품과 예술 간의 간극 같은 것이 봉합되는 지점에서의 균열 같은 것이 작업의 유통 방식에서 드러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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