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준 2015.07.27 16:19


▲ 김준희, <감각의 권리>  옥상훈


막에 감싸인 무대는 밀폐된 일종의 실험실이자 하나의 공유하는 환경을 이룬다. 앞에서 모여 숨을 들이마시는 동작 혹은 공동의 안무임을 지정하는 동시에 감각 자체에 대한 분별이다. 곧 춤(이 다할 수 없는 감각에 가까운 무엇)을 보여준다. 그러기 위해 곧 모여 숨을 쉰다는 행위만이 펼쳐진다. 하나의 울타리로 놓인 공동 환경이 여기에 작용한다. 여기에 팬티만 입고 소리를 질러대며 서로를 이유 없이 때리며 뛰어다니는 소극을 연출하는 광경 등이 이어지기도 한다. 이는 일종의 논-댄스로 보이기도 한다. 안무화되지 않는/될 수 없는 움직임들을 전개하는 것, 한갓된 몸(것)이 나타나는 것, 감각의 권리는 그렇게 보면, 보는 것이 아니라 만져지는 것, 생생하게 나타나는 것으로서 춤이 아닌 것을 이야기하는 것을 춤으로 재위치시키는 것을 이야기한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에 이 막을 찍고 나가는 건 밀폐됨으로 인한 안정된 숨의 탈피, 이곳이 아닌 저곳에 대한 동경의 서사로, 갇힌 감각의 바깥으로, 다시 온전한 감각에 대한 환상을 가리키는 것일 수 있지만, 대립된 장소 분별을 통해 결말로의 도피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어쨌든 감각의 실험은 이 실험실에서 극장이 아닌 ‘우리’라는 이름으로 구축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각의 의미는 이 작품에서 다시 재위치된 의미로서 기능하는 게 가능한데 실상 감각의 권리는 춤을 보는 것이 아닌 저 너머에서 들려오며, 보이는 것과 추는 것 이외의 것, 또 그것을 배반하는 방식으로 소리-감각의 무위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운드와 춤의 분리된 감각과 타자화된 두 영역을 가령 움직임(의 흔적)을 사운드로 변환하고 이를 녹음된 것의 반복으로 일종의 시간으로 재구성/기록해내는 행위 등으로 접점을 찾으려 한다. 곧 감각의 위치와 복권을 주장하며, 소리가 들려오는 저 너머 곧 몸 밖으로 나가며, 보는 것 너머의 신화적 장소를 등재한다. 그래서 이것은 시작이며 이 장의 파괴이다. 하지만 그 바깥에 무엇이 있다는 것 역시 신화일 뿐이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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