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준 2015.05.08 17:26


▲ <그랜드 콘티넨탈>


실존하는 거리극 축제로서는 가장 많은 인파를 모은다고 보인다. 일자형 이차선 도로를 모두 축제의 장소로 바꿈으로써 각기 다른 장소를 찾아다니며 얻는 장소 특정적인 경험의 상존 대신, 사이트로서의 구별 가능함으로 일종의 투명한 경계의 부스 형태로 공연들이 시간의 분배에 따라 온/오프되는 것으로 변화되어 있었다고 보인다. 한 마디로 비워진 공간이 도시 질서의 해방 출구를 체현하는 안산 국제거리극축제를, 오랜만에 찾았을 때 느낀 것은 한 마디로 별로 볼 것이 없다는 것.

 

장소 특정적인 무대로의 전환에 드는 비용은, 몰입의 관객 대신, 평범한 공공 설치물들과 함께 ‘셀카’ 찍는 시민의 관광객들로 수렴되었고, 그것이 붙잡아둘 수 없는 시간의 공연 대신, 함께 기억할 수 있는 추억의 기념 장소들을 구축하는 것의 전략쯤으로 소환됐다 보인다. 운동장에서 분필 가루 성분의 물질로 금을 긋는 것과 같이 아스팔트에, 이미 프로그램화된 기계손으로 한국에서 수집한 지역 특정적인-얕은- 텍스트를 새기는 기계 장치의 작품 <거리의 시인>은 사실 스펙터클로 연결되지 않고 다만 일부 관객에게 호기심만 주었으며, 커다란 폐지 탑-다보탑 비스무레한- <시민의 건축>은 공공미술적 성격을 증빙하는 임시적 공공 건축물로서 시민들의 관심을 유유하게 빠져나가며 흉물스럽게 자리했다. 수십 개의 메가폰-<메가톤 프로젝트>-은 놀이터 안에 닳고 닳은 친숙하고도 낡은 외양을 띠고 잘 울리지도 않은 채 포즈 잡고 사진 찍는 장소로 기능했다.

 

각종 서커스 등은 아주 스펙터클하지 않는 이상, 아주 빠르게 경험의 축적이 일어나고 식상하게 그것을 만든다. 뭔가 스펙터클, 또 그것의 연장선상에서 구경꺼리로서의 사로잡음의 대상들을 지양함을 추구하고 있었다고 보이는데, 그것이 ‘공공’건축물들로의 전이쯤으로 보였던 것이다. 한편 색색의 뼈대 구조물이 열림과 보존의 자유로운 경계를 형성해 눈을 끌며, 그 안에서 시민이 주인이 된-노래방 기게 앞에서 노래를 부르며- 것으로 주체의 지위를 시민에게 수여했다. 철지난 공공미술/건축이 축제 전반을 장악하는 가운데, ‘새로움을 줬다.’ 왜냐하면 공연의 지위를 쉽사리 포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것이 어느 정도 성공적이고 축제와 조화롭게 보인 것은, 열린 도로에 시민들은 앉거나 설 때의 울타리, 구역을 필요로 했었다는 것을 이는 증명하는 듯했다.

 

한편, 시민은 주체가 되어야 했다. 그것은 가령 폐막작, 커뮤니티 댄스 <그랜드 콘티넨탈>에 있었다. 각양각색의 의상을 입은, 아이부터 어른까지 남녀노소-주로 젊은 층-가 행렬을 맞춰 선 대규모 군집의 똑같은 춤은 실상 각각의 그 춤에 대한 적응, 또 춤춤의 즐거움을 띨 때, 매스게임의 메스꺼움을 상쇄했다. 익숙한 음악의 배경음악화에 계속 바뀌는 동작들과 전체의 방향 전환이 그럭저럭 볼 만한 광경을 이뤗다. 그러니까 이들은 모두 똑같음의 층위에 적응할 수 있음을 통해 시민임을 증명했다. 사실은 같은 것이지만 평등함의 이상을 노려보는 것이다. 다 똑같은 배움의 단계에서 평등함 자체로 발화하는 것이, 그럼에도 이상하게 이념적이지만은 않았던 것은, 이들이 프로 무용수가 아니라는 점이었는데, 곧 보여주는 것이 극 층위를 띠거나 서사를 가져가는 것이 아니며, 능수능란함과 함께 음악을 연기적으로 체현하는 것의 인위적인 움직임을 이들이 가져가는 데 서툴다는 것, 오히려 그럼으로써 춤추는 것 자체의 즐거움이 때로 진정 찾아지는 순간들, 또는 그렇지 않아 겪는 어색함 같은 것을 오히려 자연스러움의 범주로 포함시키며 볼 수 있다는 것이, 이 똑같음 속의 차이로 군데군데 미세한 균열로 튀어나오는 것이 매력적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오히려 잘하는 사람을 앞에 내세우고, 뭔가 따라해야 하는 사람 같은 경우를 그 중간의 속에 배치한 것과 같은, 그리고 실은 거의 대부분이 따라하기보다 그저 익숙해져 나오는 대로 추는 것 정도로 많은 시간을 들인 것의 인위성의 문제는 은폐되어야 했다 보인다.

 

이들은 실상 각양각색의 의상을 입었지만, 그것은 스스로들을 체현한 것이라기보다 시민의 다양성을 재현한 것이라는 점에서, 이것은 ‘커뮤니티’일까. 춤추는 집단은 그렇다면 커뮤니티가 아니라는 것일까. 거기에 이중의 은폐가 있는데, 곧 커뮤니티 댄스, 다음은 댄스 그 자체이다. 후자의 극 구조, 환상성이 사실 각자의 차이를 지우는 것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아마 가장 큰 몰입을 가졌을 극은, 정진세 연출, 안산 고등학교 학생들과 한 커뮤니티 연극 <올모스트, 단원>일 텐데, 이는 안산에 대한 객관적 지표와 역사들의 리서치가 결과적으로 타자화시켜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을 줬고, 흠칫 안산 시민들(?)을 놀라게끔 하는 측면이 있었다. 안산 시민이 서울을 뜨지 못하는 세 가지 이유는, 실상 서울의 부속적, 주변적 지위로 격하시킨다는 점에서, 기분이 나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주장하기보다 서울 공화국에 대한 일종의 조소에 더 악센트를 찍지 못하는 것은 안산에 집중하기 위한 연출의 의도라 해명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이는 안산을 낯설게 바라보게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누구의 시선으로 수렴되는 것일까?

 

다 언급할 수는 없지만 갓 학교에 전임한 남자 선생에 작업을 건 여고생의 모습은 풋풋하면서 일종의 판타지에 가까웠다 보인다. 여행 간 선생은, 실상 세월호 이후의 조각 난 일 년을 동화적으로 포장하며 어렴풋하게 환기시키는 듯했으나 실은 아니었고 그 정도로 연극과 맺는 현실은 연극을 보는 시선으로 수렴되고 있음을 인지했다. 그렇지만 완전히 세월호를 피해갈 수는 없었고, 그것을 직접적으로 극은 건드리는 대신, 돌아오지 않은 세월호 탑승 인원이 모두 돌아온 미래 시점에서 아픔을 시간의 지남으로 인위적으로 봉합하고 있었다. 이것은 사실 말할 수 없는 것에 겸허하겠다는 연출의 의지의 이면을 말할 것이다. 그리고 안산에서 팽목항으로 아마 일주일에 6일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버스를 몰아온 기사처럼 다만 플랫폼의 지속 가능한 매개자가 될 뿐, 나는 어떤 숭고한 무엇을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존재에 연출가의 페르소나가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된다. 나머지는 모두 학생들의 풋풋한 연극의 경험을 만들어 주는 데 관객에게 보여주기 이상의 중요성을 부여했다 보인다. 사실 이 연극이 커뮤니티 연극이라 말할 수 있는 건 참여자-배우에 있기보다 그들의 친구인 먼저 줄서 앞에 앉은 관객 대부분에 있었는데, 이들은 연극을 그 자체로 보기보다 친구들의 색다른 변신쯤으로 보고 흥분하는 외양을 띠었다.

 

사실 분절된 형식의, 꽤 많은 신scene이 있었는데 이는 여러 층위/형식의 서사를 가져가기 위한 것일 테지만, 무엇보다 여러 출연자들의 출연량을 적정 수준에서 맞추는 윤리적 고려가 뒷받침되었다고 보인다. 한편, 무엇을 더 잘할 수 있느냐의 측면을 세심하게 고려하면서. 결과적으로 안산을 소개·중개하면서 안산의 한 커뮤니티를 연극의 과정에서 형성하며, 그 경험이 소중한 그들의 자산으로 인계될 수 있는 측면에서 ‘보여주기’는 부차적인 것일 수 있었다. 아니 부차적이어야 하는 측면이 있었다. 얼마만큼 정치政治적이어야 하느냐의 부분도, 관객의 설득 이전에, 이들이 공감하고 이해하느냐의 문제보다 중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속에서 커뮤니티(를 만들며 그 커뮤니티)의 경계에 위치하는 것이 연출의 중요한 몫이었다고 보인다. 그 경계를, 낯선 시선을 확인하는 게 관객의 몫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이 축제의 진짜배기 프로그램은, <안산순례길>이었는데, 1시에 시작한 두 번째 곧 마지막 공연 역시 예약이 필요했는데 당일 날 구글 양식에 신청을 하고자 했는데 실패했다. 결국 그러다가 16분이 지나 도착했을 때 현장에는 사람이 없었고, 그 흔적을 아는 사람도 없었다. 결국 참여 연출자에게 사적 친분을 이용해 전화를 걸었지만 어딘지 그 분도 정확히 알지 못했고, 중간 기착지인 분향소에 먼저 도착했다. 분향을 하며 쏟아지는 눈물, 콧물을 쏟아내다 결국 두 시간 정도 비바람을 맞고 기다리다 자리를 떴다. 마치 카프카 ‘성’처럼 도무지 그들의 흔적조차 잡을 수 없었고, 그러다 기착지에서 그 행렬을 만났는데 ‘헤테로토피아’처럼 공간을 이질적인 풍경으로 만드는 퍼포먼스들이 중간 중간 있는 것으로 보였다. 분향소에는 들어가는 대신, 그 앞에서 어떤 의식을 했다고 들었는데, 결국 극/퍼포먼스는 퍼포먼스 그 이상이 아님의 한계를 입증한 것이었을까? 무엇보다 떠돌고 방랑하며 다음 행선지를 갖는 일시적 군중의 형태는 ‘소음’이자 불온한 집단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그 뒤에 빈 단원고를 찾았고, 죽은 친구들의 책상에 온갖 조의의 추모의 뜻을 일련의 매개물들로 전해 하나의 의사-집단 묘지를 이룬 것에 말을 잃고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를 참가했던 차지량 작가에게 들었다.

 

실상 분향소 내는 공적인 묘지였다면, 여기서는 이들의 동등한 또 하나의 공간으로서, 그들의 없음이 풍부하게 증명된다는 점에서, 사진을 봤을 때 과또한 축적이 이뤄져 있었다. 분향소에서 가장 많았던 것은 편지보다 부피 면에서 그들이 좋아했던 먹을 것이라는 데 슬픔을 느꼈는데, 그런 것들을 포함해-공공적인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측면에서- 분향소보다는 더 친근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 과또한 것은 도무지 헤아리거나 깎아낼 수 없는 그야말로 기괴한 스펙터클의 유기체를 이루고 있었다는 점에서 슬픔 이상의 놀라움이 컸다. 다섯 시간 걷는 것이야 문제가 없지만, 다섯 시간 이상을 고립된 상태에서, 그들이 들어가지 않았던 분향소를 처음 찾았고, 실상 이 이전에 갤러리 류가헌의 전시에서 본 팽목항의 기록들, 죽은 아이들의 방을 포함해, 분향소 공간, 그리고 단원고의 빈 교실의 애도 공간의 사진까지 세 개를 비교해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그것은 모두 다르며, 누가 어디서 애도했느냐 하는 점에서 차이를 띤다- 이 퍼레이드에서 떨어져 나가 또 다른 해석과 체험의 과정을 가져갔다는 것으로 이 안산순례길에 대한 일단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으로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서현석의 ‘헤테로토피아’의 유사한 맥락에서, 의사 관광형 퍼레이드로 생각되는데, 실제의 기억이 겹쳐져 있다는 점에서-이 말은 사실 엄밀하지 않은데 그것보다 기억을 만들어간다는 것에 가깝다- 실제와 가상을 구분하기 어려운 데 이 퍼레이드의 의미가 있었다 보인다. 그렇지만 이러한 또 다른 기억 구성은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이것은 엄숙한 관광인가, 예술이 할 수 있는 예술 너머의 실천일까? 안산을 통해 우리를 바라보는 것임을 명시하는 것일까, 아니면 안산 그 자체를 바라본다는 착각 속에 안산을 타자화시키는 것일까? 이것은 어떻게 기억될 수 있을까? 실상 이러한 진지한, 예술 실험, 행위는 축제와 외떨어져 진행됐고, 대부분의 시민은 웃고 즐기며 적당히 식은 축제의 열기를 온존시켰다는 점에서, 축제의 의미는 균열의 양상을 은폐하고 있었다고 보인다.

 

마지막으로 외국 공연이지만 한국적 맥락을 외삽한 <철의 대성당>을 거론하자면, 이는 기중기에 매달린 짧은 곡예의 스펙터클보다 그것을 어느 정도 거리를 갖고 있는 조춘만의 시점이 중요하게 자리하는 공연이었다. 중공업에 종사해온 경험의 내레이션은 렉처 퍼포먼스 형식으로 조금 어설프게 삽입되어 있었는데, 아스팔트를 끄는 듯한 거친 목소리의 끌개는 너르고도 큰 움직임의 안무와 적절하게 맞아 떨어졌는데 그 음향이 소거되며 내레이션 전의 오프된 음악의 상황에 관객들이 많이 빠지는 일이 벌어졌다. 첫날의 경우였다. 둘째 날은 폐막 전의 규모가 가장 큰 공연이라 달랐을 것으로 보인다. 앞에서 철골 구조물을 세우는 것 뒤에 무거운 물체를 단 가미를 끄는 등의 행위의 조춘만의 자기 지시적 행위의 재현은 실상 그의 경험의 축적의 시뮬레이션이라는 점에서 체현되는 바가 컸다. 그래서 어설펐지만 우습지는 않았다.

 

그가 주변의 경계로서 시선의 가상 프레임을 형성한다면, 알리와 다른 무용수는 철골의 연금술적 작용, 거대한 김 등의 중공업 공장 안의 분위기를 추상적으로, 그러나 비교적 뚜렷한 형국으로 표현하며 실제적인 공간의 놀이를 형성했다. 역사적-구술적 텍스트와 춤의 만남은 후자의 번역 과정이 드러나는 과정이기도 했고, 낯선 텍스트의 살결이 채 체화되지 않은 채 거대한 텍스추어의 흔적으로 공연에 남아 있었다. 예전 춤과 크레인의 거대 스펙터클의 표현 양상은 매우 다른 양상으로 전환되어 있었던 셈이다.

 

앞으로 안산 국제거리극축제가 나아갈 방향은 무엇일까, 이는 시민 주체의 탄생인가, 세월호 이후의 예술의 말함인가, 공공의 형성일까, 세 가지가 어느 정도 섞여 이번 축제를 이뤘다고 생각하고, 향후 축제를 기대해 본다.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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