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준 2014.12.09 09:03

프로스트 라디오Frost Radio(서리 라디오)는 특정 장소에서의 특정 주파수를 라디오로 듣는 관객-퍼포머의 체험으로 완성되는 일종의 장소 특정적 듣기라 할 수 있다. 라디오는 특정(가청) 주파수(영역)에서만 가능한데, 전파 송신의 역량에 따라 그 장소는 무한해질 수 있겠지만, 전파의 이름의 근접과 함께 그 전파가 닿아야 하는 실제적 거리에 대한 감각이 우선하는 특성으로 인해 여전히 장소 특정적이며, 동시에 장소의 연장적이며 동시(다발)적인 특성을 띤다. 현장에 당도했을 때 주파수는 다리 밑으로 내려가는 과정에서 건물에 걸려 나오다 말다 그랬는데, 그 정도로 전파가 약했고, 다리 밑에 내려왔을 때 전파(소리)의 끊김(간섭) 현상은 없었다.

그리고 마주한 광경은, 평화롭게 마치 쇠라의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의 점점이 박힌, 어느 한낮의 여유로운 풍경의 전면, 곧 앞을 향한 사람들의 모습을 상기시킨다. 실제 사람들은 소수이지만, 정지 장면으로 정면을 향해 머물러 있다. 가만히 서서 또는 앉아서 무언가를 응시한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그들의 응시 방향에 있는 (상복처럼) 이영준 교수·작가가 검은 정장을 입고 앉아 있었는데 너무 그 풍경이 이질적으로 비쳐졌다. 그러니까 라디오는 거리를 벌리며, 함께 하는 게 가능한데, 그럼에도 사람들의 시각은 그 ‘멀리’를 향해 있었다.

현재 빛을 통한 존재와의 시차(-현재로 보이는 과거의 이미지)는 전파를 거쳐 전달되는 소리의 시차(-공기를 거쳐서 전달되는)가 결합된 어렴풋한 곧 소리와 이미지의 분리와 절합이 일어나는 순간-엄밀히는 거의 느낄 수 없는 이미지의 시차와 그 싱크율까지 계산하긴 힘든 사운드의 시차가 보는 것과 들리는 것으로 각각 하나로 구성될 때는, 곧 어렴풋한 소리의 발신원이 저 멀리 있던 순간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도란도란 얼굴을 보고 그것을 차라리 들을 순 없을까, 어차피 이곳에 와야 한다면. 그렇지만, 그럼에도 이 청취의 형식은 선유도공원 일부에 비교적 자유롭게 모인 유대 없는 관객을-군중을 구성할 수 있었던 셈이다.

현재적 청취가 끝난 이후, 라디오는 먼 곳에서 온 편지의 들림으로 시대를 재현하는/뛰어넘는 편지, 곧 청각적 편지가 그 수신원이 원래 나를 향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어떤 낯선 시간의 감각을 느끼게 한다. 사실은 듣는 이를 상상하고 대면하는 방식으로 라디오는 여겨지기도 했는데, 곧 청중이 아닌 호명을 통한 유일한 관계가 형성할 때 한 개인(화자)의 내면을 탄생시키는 편지의 사운드 변환으로 프로스트 라디오는 다양한 내용을 라디오의 내용으로 삼으며 그 매체의 간격을 지시·시험했다고 보인다.

아티스트와의 만남을 라디오로 들어볼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작가의 신비한 존재감을, 여전히 얼굴 없음, 그러나 얼굴을 대면하는 정도의 친밀함으로 상상할 수 있는 라디오 공간으로 그 내용/매체의 형식은 정의되기도 한다. 이영준 교수는 자신이 들었던 라디오 경험의 충격적이었던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었다. 곧 라디오 형식 자체를 반추하는 라디오, 이렇게 라디오는 일종의 주파수-샤먼으로 과거/현재로부터 귀를 타고 들어왔고, 추억의 라디오, 곧 회고로서의 라디오와 그로부터 그 의미를 미래로 투사해 보는-곧 그 상실을 기념하는- 듯한 시간대에서 끝이 났다. 더 들었었다면 많은 이의 참여로 라디오 콘텐츠들에 대한 더 구체적으로, 확장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었겠지만 매우 짧은 참여로 아쉽게도 이 정도로 그친다.

라디오가 주파수 특정적인 것에서 장소 특정적인 것이 우선 전제가 되는 것으로 그 경험의 전제가 이동한 후에, 프로스트 라디오가 찾은 몇 곳은 곧 도시의 비장소로 여겨지는 곳들로, 금호 재개발 구역, 망우리 공동묘지, 양화대교 밑이 선택된 이유는 아마도 회고적 매체로서의 라디오를 통해, 듣지 않으나 들리는 어떤 과거의 것들에 대한 목소리로부터의 입구/출구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보이지 않으나 존재하는 목소리들은 이미 유령과 죽은 것들의 재생이기도 하고, 이영준 교수와 같은 현재적 진행을 통해서는 현재의 어떤 재현과 시청각의 분리와 각각의 뚜렷해짐으로 인해, 라디오를 통해 라디오를 이야기하는 메타 라디오의 채널을 만들기도 하고 그 가운데, 이영준 교수는 그 들으면서 향하는 보이지 않는 지평을 시각화/이미지화한 것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공동 현존의 근거를 마련한다기보다는.

라디오는 역설적으로 마이크와 가장 가깝게 위치하고, 따라서 추운 날씨와 맞물려 입김을 창출하는 데서 서리라는 이름을 붙인 것으로도 생각된다. 하지만 그 청취의 기약은 이곳, 현재를 벗어나 도달하기도 할 것이다. 곧 프로스트 라디오는 녹음된 것-그래서 들려질 것과 녹음하는 것-그래서 듣고 있는 것을 제각각 가져가는 방대한 라디오 형식을 빌은 소리들의 아카이브로 볼 수 있다.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 프로스트 라디오 웹 팸플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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