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준 2014.07.17 16:29

‘고(告)함’과 ‘고함(高喊)’ 사이에서.

 

으레 그 제목인 '25시-나으 시대에 고함'에서, ‘고함’은 단순히 어떤 사실을 알린다는 의미에서의 고(告)하다의 명사형이겠지만, ‘크게 소리치다’라는 의미에서의 고함(高喊) 내지는 ‘북을 치다’(鼓)라는 의미가 더해진 소리침으로 풀이 가능하다. 아니 어쩌면 그 후자의 의미가 더 적합한지도 모르겠다. 이는 구체적으로는 나의 시대에 알릴 무엇(message)이 있다는 식으로, 제목의 ‘에’를 ‘앞말이 어떤 움직임이나 작용이 미치는 대상의 부사어임을 나타내는 격 조사’로 상정할 때의 전자의 해석과 나의 시대의 고함(들)이라는 그 행위(의 성격)에 초점을 맞추는 식으로, 나의 시대로부터의 크게 소리침의 ‘고함’이라는 ‘에’가 ‘앞말이 시간의 부사어임을 나타내는 격 조사’로 상정할 때의 후자의 해석이 뒤따른다. 전자가 아무래도 그 행위 자체보다는 그 행위가 상정하는 내용과 그 내용이 품는 공통의 기의를 만드는 데 초점이 있다면,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가 주격으로 상정된다면-좀 더 정확하게는 내가 나의 시대에 고하는 발화자로 체현되고 있다면, 후자는 그 행위 자체의 파격으로서의 형식과 함께, 그 고함을 하는 입장과 듣는 입장 모두를 포괄하게 된다. ‘고함’ 자체가 주격이 된다. 이는 ‘고함’이 펼쳐지는 하수상한 세상 자체에 대한 관찰과 목격으로 나를 견인한다. ‘고하다’라는 또는 ‘고함’이라는 전자 내지 후자의 의미는 모두 행위를 강조한다. 또한 시의성을 강조한다. 시작한 지 하루가 거의 다 되어 가는 시점에서 이경성은 애초 이 ‘연극’(?)이 성립된 공간/장소에서 차를 등지고, 뭔가 비장한 듯한 각오를 묵묵하게 담아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거리에서의 1인 시위를 표방한 연극의 형식은 배우와 관객을 모두 일반 사람들로 치환하며 그것에 근접해 갔다. 왜 이경성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고하거나 고함치지 않고, 서 있었던 것일까. 또한 왜 ‘시위’를 선택한 것일까. 이경성의 침묵시위가 끝나고 가령 24명의 참여자는 각자의 행위를 각자의 장소에서 했는데 모두 말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보여주기 식의 스펙터클이 성립되지 않는다면, 그리고 ‘거리’가 무대로 인식되지 않는다면, ‘거리의 인물’이 배우로 인식되지 않는다면, 실상 이는 거리의 스펙터클을 더할 뿐이다. 또는 거기에 묻힐 뿐이다. 그렇지만 그 반대로 거리를 자르고 거기에 명확한 무대의 경계를 만드는 것이라면, 그래서 명확하게 상연되고 있음을 상정하는 경우라면 또한 기존 무대로 환원되는 것에 가깝다. 사실 한 명이 표현의 어떤 눈에 띄는 형식을 고안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일반인의 참여가 반절이 넘어가는 이번 공연 내지 퍼포먼스 같은 경우, 배우의 훈련된 몸짓을 수반하지 않는다면, 그 자체로 시선을 사로잡기는 쉽지 않다. 거리에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고 무엇보다 자동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 위에서 어떤 말 자체는 웅얼거림으로 묻힌다. 좌와 우의 스쳐 지나감의 일반적인 보행의 기능적인 측면을 거슬러 멈춰 앞을 응시함은 실상 대면이 아닌 그 스스로 흩어짐의 형체를 체현하게 된다. 이순신을 대면하며 그것의 현재의 거울상이 되는 한편, 시끄러운 도시 풍광을 하나의 카메라-시선으로 재편하며 그 속에서 사라지는 이 이경성의 서 있음은 한편으로 그 초라한 한 현대인을 우스꽝스럽게 풍자하는 것이면서, 말 없는 역사로서의 화석화된 동상이 감내하는 말할 수 없음의 답답함을 체현하고 있었다. 이미 시위라는 것은 심미적 제스처에 그 중요성이 있지 않다. 시위가 ‘위엄’ 내지 ‘세력’을 ‘보이는’ 것이라고 한다면, 1인 시위의 비폭력성, 초라함(?)의 일자는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바로 거기에 1인 시위의 어떤 힘이 있다. 스쳐 지나가며 붙드는 어떤 표지판으로서의 오브제-신체, 힘없음, 자신의 모든 것을 그 힘없음으로부터 드러내며 하나의 사실, 가치만을 붙들고 (그 표지판의 언어로 양도된 탓에 나타나는) 말없음의 말이 끝없이 공명한다. 거기서 어떤 하나의 형상으로 타자화된다. 곧 말없음만이 끊임없이 하나의 말을 한다. 이경성은 실제로 시위자로 위치하기보다 그 포즈를 취하면서, 이 시위들을 종합하는, 그 시위의 경계에서 시위의 조건을 바라보는 차원에 위치해 있었다고 보인다. 곧 나의 시대에 ‘고함(들)’의 바깥에서의 일자, 아니 보편자. 그러니까 이경성의 행위는 어떤 것도 나타내지 않음으로써, 고하거나 고함치지 않음으로써 그것들이 일어날 수 없는 부당함에 대한 침묵의 형태를 띤 응전을 벌이고 있었던 것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경성을 중심으로 23명은 이 자리로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저마다 흩어져 자신만의 시위, 또는 퍼포먼스를 벌인다.

 

‘제3의 무대’?

 

이경성 연출을 포함한, 이 24명은 각기 다른 시간을 이 공연 안에서 허락받고 있지만, 그 시간에 따른 어떤 등급의 차이도 있지 않다. 이것은 하나의 유기적이라는 극 속의 기승전결의 흐름을 따르지 않으며, 다만 한 시간만큼의 간격이 주어질 뿐이다. 이들은 시위에 해당하는 누구나, 어떤 사연이 있거나 특별한 사항에 대해 주장을 하고자 하는 누군가의 범주에 속하게 된다. 시위의 형식을 전유한 이 공연은 일반인과 배우가 뒤섞여 있는 가운데, 예술에서 삶으로 더 확장된 관계를 지향하고 추구하게 된다. 그래서 어떤 특별한 무대가 아니라, 그저 그 한 시간 동안 하나의 자리에 누군가로 있었다는 게 중요할 뿐이다. 특별히 예술과 관련을 맺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더 ‘특별할’ 수는 없다. 그러니까 예술가라면 무대가 아닌 이곳에서, 예술가는 별도의 무대를 만들지 않고, 오히려 이곳에 예술이 있음을 선언하는 데 고착되기보다 예술가가 아닌 시민으로서 위치하며 예술가로서의 그의 자격을 환원시킬 수 있는가. 그러면서도 이것이 그 자체로 그 자리에서 유효, 적절할 수 있는가. 이것이, 곧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선상에서 또 다른 자리를 만들 수 있느냐에 대한 하나의 질문이다. 다른 한편, 비-예술의 시위 자체가 25시간이라는 단 하나의 형식으로 묶이는 것만으로 비-예술이 아닌 무엇, 예술의 범주에서 예술의 무용함을 드러내며 오히려 예술의 경계를 넓히는 게 가능한가는 그 반대편에서의 물음이다.


만약 이것을 공연으로 인지한 사람이라면, 그리고 사실 당연히 이것을 미학적 태도로 지켜보러 온 사람들만이 이 ‘공연’을 보러 왔기 때문에, 사실상 이 공연의 관객은 그 외에는 없다. 그리고 이들은 24시간 이후 더해진 잉여의 한 시간에 광화문광장을 돌며 각자의 자리에서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을 찾아 나서게 된다. 모두를 찾을 수는 없었다. 이경성의 자리를 받아 두산 기업의 부당한 대학교 장악에 반발해, 중앙대학교 철학과를 자퇴한 김창인 씨는 상을 놓고 앉아 『맹자』(?)를 묵독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가 어쨌든 책에 집중해 있는 시간은 단지 잠깐의 건널목으로서만 유효한 현대인의 시간과 절연돼 있었다. 이는 책의 진리 자체가 무용한 시대에 대한 좌절 어린 비판과 ‘그럼에도’의 의지와 함께, 의도적으로 현재/현대의 시간과 절연함으로써 그 뒤에는 조아라 배우가 자신의 얇은 하얀 원피스의 끄트머리를 늘어뜨려 배수구의 더러움을 묻히기 시작해 춤을 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김응택 씨가 손을 허공으로 뻗치며 그윽한 시선으로 세상을 여유롭게 조망했고, 민아비 배우는 무심한 표정과 눈빛으로 헤드폰을 끼고 있다 팔을 뻗쳐 그에 조응했다. 하지만 이 예술적 몸짓들은, 너무나도 아름답고 심미적으로 비춰질 수 있는 풍광은 오히려 너무나도 불필요한 예술을 다시 한 번 재현하고 있었던 것에 가까웠다. 그러니까 이는 이 광장의 시간에 틈을 가격하기보다 오히려 그냥 하나의 오브제처럼 더해지는 것에 가까웠다. 물론 잉여의 도시 공간을 유효적절하게 활용한 심미적 표현이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는 이렇게 이 장면을 비평할 수 있는가. 이 공연(들을 포함한 하나의 공연 형태)은 24시간에는 조율되지 않는, 모두의 자율적 행위에 대한 무조건적인(?) 포함과 승인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점에서, 당연히 이 공연, 그리고 이경성 연출에 대한 비평이 가능해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그저 자신의 모습으로 있기만 하면 됐던 것이고, 이는 그들이 그저 일반인의 한 사람이었다는 것. 그래서 나는 예술가가 아닌 일반인에 대한 어떤 예술적 행위를 비판하는 게 가능한가의 질문을 먼저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비평은 어디까지 가능한가.


한편, “다음 문장을 읽으시오” 현수막이 걸린 일민미술관 앞에는, 허나영 작가가 페이스북에서 세월호 관련해서 사람들이 올린 글들을 엽서에 받아 적어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있었다. 일민미술관의 현수막이 이번 전시 제목이고, 허나영 작가가 그 브로슈어를 캐리어에 올려놓고 있었으므로, 이는 미술관이라는 폐쇄된(?), ‘입장’이라는 절차를 밟아야 ‘다음 문장’을 읽는 게 가능해지는 것을 뒤집어, 사회의 한 담론의 유형을 취해 그 슬로건적 문장을 실천하며 전시를 재전유해 수행적 맥락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볼 수 있었다. 그녀의 작업 자체가 지난 전시 <텍스트의 기념비>에서 볼 수 있듯 어떤 문형들을 갖고 타자의 형상들을 불러일으키는 정서적 도약의 차원을 보인 것과 같이, 그녀는 하나의 문장(들)을 이번에도 소환했고, 엽서를 고이 한 명의 사람에게 직접 건넸고, 그 문장이 선물로, 또 기록으로 남길 소망하는 듯 보였다.


일민미술관 앞에는 가곡을 하는 박민희 씨가 소음 속에서 의연하게 가곡의 단편들을 뽑아내고 있었는데, 그 형태는 확인 가능했지만 잘 들리지는 않았다. 그리고 사람들의 주목을 크게 받지 않았다. 그녀는 일민미술관을 등지는 대신 비스듬하게 서 있었는데, 이는 실상 관객을 마주하는 대신 마주하지 않는 아직 닿지 않은 관객으로 멀리 그 시선이 뻗친 가운데 실천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벽 자체가 되어, 이 공간으로부터 은폐되어, 이 벽을 타고 어떤 닿지 않는 소리들을 간헐적으로 뽑아내고 있었다. 이러한 ‘비스듬함’의 위치는 앞서, 그 자체가 다시 기존의 무대로 환원된 풍광, 그리고 일상 그 자체가 아닌, 곧 일상으로 환원되고 마는 게 아닌, 제3의 무대를 그 짧은 시간에 본능적으로 선취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 3의 무대를 일단 무대와 일상이 아닌 제3의 표현 공간으로 놓자. 그렇다면 그녀는 왜 무대가 아닌 이곳에 서서, 자신이 부르던 곡들을 부르고(재현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이 당연히 닿지 않음, 닿을 수 없음, 이 소음 속에서 또 하나의 소음, 인간군상으로 환원되는 풍광 속에 어쩌면 일상이 있는 것은 아닐까. 곧 예술의 일상, 일상 안에 고투하고 있는 예술의 형상. 박민희는 실패하는 가곡들의 단편들을 가지고 그런 걸 입증해 주고 있었다.


반대편의 신호등을 건너왔을 때 비키니를 입고 노란색 포스트잇들을 붙이고 일광욕을 하는 여성(?),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따위의 각종 문장을 헤드폰을 끼고 읽고 있는 박일주 씨, 세일러문 교복 코스프레를 한 정예진 씨의 분필로 그어 놓은 게임 공간에 돌을 한번 던지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모습 등을 볼 수 있었다. 이런 너무 뚜렷하게 드러나는 풍경들에서 보이지 않는 부분, 곧 잘 보이는 게 아니라, 일상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미묘함의 풍광들을 발견해 이야기하지 못하는 건, 결국 이 공연의 실패가 아닌, 관객 자체의 실패에 더 가깝다고 보인다. 박일주 씨는 자신이 프린트한 문장들과 그 아래 꾹꾹 눌러 쓴 몇 개의 문장들을 그야말로 자신의 목소리로 재생시키고 있었는데, 뮤트된, 그리고 정지된 신체로부터 어떤 문장들을 하나의 잠언으로 스쳐지나감 속에 박아 두려는 공명의 노력에 가까웠다.

 

자유 참여 형식의, 무위의 스펙터클

 

마지막으로 각자는 이경성의 북치는 소리에 의해 다시 처음의 자리로 소환되었다. 결국 고함은 또한 고(鼓)함이었던 것이다. 일렬로 길게 늘어선 23명의 참가자들은 북을 한 번 치면 제일 앞에서부터 한 명씩 뒤돌아 다시 한 번의 북소리에 맞춰 다른 참여자를 포옹하고, 곧바로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이 북침에 의해 모두는 다시 만나고 사라졌고 하나의 끈으로, 하나의 공연에 대한 의식을 공유한 공연자로, 참여자로의 자격을 인준하며 흩어졌다. 앞서 ‘고하다’의 고함은 그 자체의 표현 형식을 지정하지는 않는다. 반면 ‘고함’은 그 태도에 한층 고양된 무엇이 묻어난다. 도시의 일상적 시끄러움에서 말하지 않고, 섞여들어 잘 드러나지 않는 행위들, 또는 그 말의 시도의 실패를 통해, 시끄러움을 겪는 음 소거된 하나의 신체를 체현하는 것으로 무언가 고하는 것을 통해 고함(高喊)의 자리를 만들어 냈다. 이는 단적으로 이경성의 말 없는 시위에서 극적으로 나타났다. 또는 헤드폰이라는 오브제를 통해 단절된 소통의 상징을 거침으로써. 한편, 각자의 고함(鼓)이 모여 고(鼓)함들이 될 때, 자연 고함(高喊)의 스펙터클의 형태가 됐다. 무엇보다 무엇도 가능한 이 고(鼓)함의 자리에 모두의 자리를 열어둔 이경성 연출은, 공동의 참여의식을 고취하며 감동적으로 이 자리를 마무리했다. 그러니까 관객을 상정할 때에야 성립하는 커튼콜이 아닌 내재적인 화합의 장을 통해. 흩어진 한 시간 동안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표현, 또는 보이지 않았지만 자리를 모색하던 사람들의 분별은 그 각자의 미학적 평가, 그리고 성공과 실패의 여부를 따지기 이전에, 이경성의 민주주의적 예술의 삶으로의 외연 확장이라는 콘셉트에 포함된다. 여기에는 어떤 배제나 선택은 없다. 시위 자체가 가능함을 확인하며, 예술계에서의 그 형식 자체를 선취하고자 한, 도시의 스펙터클(그것의 실패와 상관없이)을 실현하는 것이 어떤 흐릿하면서도 명확한 이 공연의 전제였다. 한편 각자의 성공과 실패(그리고 비평의 몫 역시)는 이 공연 자체에 봉헌되기보다 각자의 몫으로 위태하게 소급된다. 그렇다면 이 공연은 일단 무대도 일상도 아닌 제3의 무대를 인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큰 긍정의 전제를 마련한 것일까. 그 자체로 미학적 특이성의 실천과 성취가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이것은 다시 따라야 할 하나의 질문이다.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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