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준 2013.10.16 13:27


▲ <메디아 온 미디어> [사진 제공=한국공연예술센터]


제목처럼 미디어로 중개‧중계되는 메디아에 대한 이야기다. 계속 역동적으로 달라지는 각기 다른 미디어 속 모습들로부터 취해 온, 흰색 프레임 속 장들의 변전은 일종의 역할 놀이이자 중계되는 쇼로, 그 사이에 그 역으로 분하는 장 바깥으로의 준비가 있다.


 메디아에 대한 내용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또 다른 매체로 전해지고 있음을 메타적으로 구현하며 미디어 형식(의 달라짐) 그 자체를 보여주며 그 내용을 현실의 유비 관계로, 매체가 전하는 삶의 형식들 자체로 연장/확장한다. 이는 곧 ‘미디어는 메시지다’의 맥루한의 전언을 상기시킨다.


 미디어 속 모습으로 연극을 꾸밈에 따라 미디어와 연극은 서로 간의 절합의 측면을 중간 중간 가져가게 된다. 메디아의 기자회견장으로 시작된 연극은 메디아의 표현되지 않는 정동을 이후 행동에 대한 예고로 공개적으로 표현하며 원작에 대한 메디아 스스로의 메타적 주석으로 바꾼다. 플래시 소리와 타자의 미디어에 동반된 사운드는 금속의 충돌 사운드로 변형되어 이 현실과 결합된다.


 80년대 더빙 영화의 상황 연출, 비정형의 서기라는 목소리와 포즈 모두의 과잉 현존이다. 이는 ‘연극의 정면성’이라는 것과 다른 ‘영화의 정면성’이라는 카메라를 향한, 그리고 카메라의 절취라는 특성을 구현하는 것에서 기인하고 있다.


 평범하지 않은 고귀한 주체들의 극이 현실에서의 치정극이자 리얼리티 쇼로 바뀌는 동시에 비극은 희극으로 변한다. 꽤 격렬하게 메디아와 가 머리끄덩이를 잡고 벌이는 격렬한 레슬링 현장은 리얼리티 쇼의 가상 실재 너머의 실재로 다가오는 역칫값을 건드리는 측면과 함께 진정한 리얼리티-현실(쇼)의 현시로 그것을 바꾸었다. 


다음은 신비한 이국 취향의 시타르 연주와 수마 탄트라 요가 쇼와의 결합, 남녀의 긴밀한 섹스 체위의 짜임은 에어로빅에서 유추해 냈을 뒤뚱뒤뚱 걸음과 스텝과 대사의 절합된 수준으로 진행되는 무기를 든 격투 캐릭터들, 뒷걸음질 치며 네 열로 걷는 컨베이어벨트 장치의 파동과 맞물린 움직임들, 마지막에 한 자리에 붙박여 시작 전 게임 속 파이터 캐릭터를 체현해 내는 메디아, 입에 무기를 들고 타자를 치는 파이터-기자-관중들(동시에 절합되는 타자-무기 사운드를 체현하는 금속 음향)과 진행자의 관중을 직접 향한 내레이션 등.


 “미친 황소”를 격발하며 포크와 나이프를 세움의 우연적 합치/의도적 일치는 미디어를 텍스트에 맞춰 합목적적으로 구현하는 것이다. 물론 미디어와 원본의 경계 아래. 


매체 속 전함이라는 전제에 의한 연극의 매체를 전유함은 실은 매체로부터 추출해 낸 연극적인 것(이 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매체의 전유이자 매체의 연극적 재전유가 될 수 있다.


 만화영화의 어린이 캐릭터들의 옹알거리는 목소리, (의사-)유아-되기의 형식이다. 여기에는 폭력이 암약한다는 점에서 말하자면 그로테스크한 정념으로 분출되고 있다.


 처음의 메디아의 선전 포고는 전쟁 현장으로 구현된다. 총소리, 엄밀하게는 앞선 매체 환경들을 체현하는 금속 사운드와 동기화된 액션은 포즈들로 빚어진다. 카메라가 잡고 있음의 (전체의) 일부, 집중시키는 숏, 반면 이 숏들의 동시적 현전, 곧 영화가 하지 못하는 것들을 구현한다. 물론 이는 몇 장면을 세로로 잘라 한 화면으로 붙인 편집된 동시 현전의 컷으로 구현 가능하지만 그것과는 달리 각기 다른 컷(존재)들을 시차를 없애는 봉합으로 만들지 않는다.


 교묘한 속임수로서 투항한 듯하다 총을 쏘려 함, 그리고 되돌아오는 여지없는 순간의 격발에 당함이라는 영화 클리셰가 전용된다.


 그녀의 격발 이전에, 의 메디아에 대한 ‘괴물monster’이라는 명명이 따르는데 이는 새로운 ‘주체’의 탄생이다. 오직 복수가 유예되며 존재하는 비주체의 현존은 그녀를 덮는 삶의 무게는 그녀가 장악한 세상의 가벼움을 상정하는 주체의 현전으로 뒤바뀐다. 이는 다시 게임 속 캐릭터로 상정되며 사운드에 의한 치장 효과를 더한다.


 미소라 히바리의 “흐르는 강물처럼”을 부르며 커튼콜 형식을 빌려 극과 현실의 경계에서의 박수를 자연스레 유도하며 가요 무대나 디너쇼의 현장을 체현하지만 이는 진정한 커튼콜이 아닌, 아니 (이는 완전히 극이 된다는 점에서) 진정한 커튼콜을 성립시키며 끝의 트릭으로 이를 극에 포함시킨다.


 물론 분절의 합산적 구조의 유동성과 그 자유로운 형식을 생각한다면 이는 그리 예기치 않은 것만은 아닐 것이다.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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