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준 2013.10.11 15:07


▲ 연극 <광부화가들> [사진 제공=명동예술극장] (이하 상동)


일차 텍스트 곧 대본을 현재화하는 연극의 특성을 전제하면, 동시대성을 띤 작품은 단순한 재현 이상의 것을 넘어, 현재에 (정치적으로든 문화 비평적으로든) 유의미한 감각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1934년 영국 북부, 우여곡절 끝에 애싱턴 노동자교육협회에 속한 광부들의 미술 감상 수업을 맡은, 예술에 대한 어떤 편견도 배제하고자 하는 선생 라이언의 등장은 일견 이 작품의 초반을 카르페 디엠이란 개념을 우리에게 전파했던 <죽은 시인의 사회>의 로빈 윌리엄스를 떠올리게 한다. 


반면 구체적으로 그가 전하는 예술의 의미는 작품의 의미가 주어져 있는 것(작가의 의도나 작품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림을 보는 사람이 받아들이는 부분에서 발생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이미 바르트의 수용자 중심의 미학으로의 전환이 포스트모던 미학의 도래의 시점과 맞물려 있음(그래서 이미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음)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한다면, 이에 대한 일종의 계몽 아닌 계몽의 형식으로 전해지는 그의 말이 관객에게 여전히 유효함을 남기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볼 때 오히려 이 작품에 대한 동시대성은 여전히 ‘작품에서 작가가 전하려고 한 메시지는 도대체 뭔가요?’라는 회의(를 인식하지 못하는 회의) 아니면 순진한 물음의 두 양상에 치우쳐 있는 국내 관객층에 대한 유비임을 수용할 때만 유효한 것은 아닐까.


 ‘누구나 화가가 될 수 있다’라는 명제 역시도 실은 요셉 보이스의 해묵은 명제인 동시에 올리버(강신일)의 애초에 작가여야만, 곧 타고 나야만 그것이 가능하다는 회의가 뒤따르지만, 그 말 자체를 입증하는 이 광부화가들로부터 오는 감동의 전언이 되는 것을 볼 때 이 작품이 갖는 시차적 수용‧감동은, 오히려 이 작품을 떠나 해석이 되어야 할 부분으로 보인다.


 이른바 화가면 화가지 광부-화가라는 절합된 이름은 올리버를 기점으로 시험대에 오르는데, 둘 다 동시에 실제적으로 행할 수 없음, 나아가 두 직업적 정체성을 다 가질 수 없음의 딜레마와 함께 그러하다. 하지만 이 절합은 두 가지 정체성이 사회적인 인식으로서 어디까지나 간극을 형성할 수밖에 없음을 가리키는 데서 진정 문제적이다.



‘그들은 화가야, 광부치고는 정말/썩 잘 그리는.’, ‘그들은 광부야. 그림을 제법/잘 그리는.’, 이러한 인식으로 소급되는 광부화가라는 이름이 갖는 딜레마.


 작품의 마지막을 보면 실제 작품을 사고파는 자본의 대상으로 놓길 원하지 않는 연대주의적 관점을 관철한 끝에 이들의 작품은 팔리는 대신, 철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이는 오히려 그들의 작업을 작품으로 가치 평가하기 힘들게 하는 측면이 있다. 


소위 매끈한 그림, 팔리는 그림에 대한 차원에 대한 전적인 옹호가 아닌, 가치 산출의 측면에서 가격은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 최소한의 측정 기준이라면, 그 탄력적인 거대한 시장의 흐름 안에 포섭되지 않는, 그러나 어떤 시대적인 유물로 화해 버린 그 그림들은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와 그들도 작가였다는 식의 희망과 역사의 공허한 담론으로 사라지는 인상을 주는 것이다. 곧 사라지는 것을 보여주는 게 연극이라면, 오히려 연극으로써만 그들은 작가로서 다시 부활할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림들은 실제 보이는 것보다 어떤 살아 있음으로 다가오는데, 이는 빛을 띠고 출현하는 PPT 형식, 그리고 그 거대한 크기에 의거한다. 일종에 떠오름으로서 오는, 현전의 양상이 그 그림들을 더 대단한 무엇으로 격상시킨다. 그리고 모두가 함께 보는 그림이라는 하나에 대한 집단 관객을 산출한다. 동시에 그에 대한 의미들을 이야기하는 자리에 호출되며, 우리는 주체적인 관람자가 된다. 이 점이 이 작품에 대한 따스함의 공감을 얻게 하는 (두 번째) 부분이 아닐까 가령 (첫 번째) 작품의 의미는 우리에게 있다는 전제 아래.



ps 아무 편견 없는 것 같던 선생도 동양의 옛 그림들에 대해서는 관습화되어 있으며 잉여(무용)로서의 여백을 전제한다. 그 역시 모더니즘 이후의 예술관을 인류학적 대칭의 시각이 아닌 편협하게 대입하고 있는 바다. 이런 부분을 가감 없이 집어넣은 작품의 의도도 궁금한 바다.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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