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준 2013.10.11 14:02




- 과도한 현전/매체를 초과하는 실재: 뤼미에르 형제가 1895년경 소규모의 정원으로 카페에서 영화를 상영했을 당시 기차가 스크린을 뚫고 사람들을 덮칠 것처럼 느껴져 그것으로부터 도망을 쳤다는 일화는 꽤 유명하다. 스크린이 아니라 실제 그 규모는 더 컸을 테니 초기 열차는 사람들에게 거대하다는 인상을 심어줬을 것이다.


- 시스템으로서 열차: <설국열차>는 빙하기 이후 인류 대부분이 죽고 소수의 사람을 싣고 1년을 기점으로 원래의 지점으로 돌아온다. ‘노아의 방주’와 알레고리를 이루는 듯했던 열차는 산업혁명과 노동/진보의 알레고리로, 다시 시스템 자체에 대한 사유로 나아간다. 


- 레일웨이 트래블러스 핸드북 The Railway Traveler's Handbook: 파편적 텍스트들은 작가의 방대한 리서치를 전제한다. 이는 근대의 궤적을 꾀는 동시에 서로 다른 공간을 가로지르는 열차의 특질을 환상적으로 벌여 놓은 것에 가깝다. 이 ‘환상’은 6채널 스피커에 그 중간 위치들에 명멸하는 조명의 순환 궤도를 따라 입체적으로 다가오는 목소리와 빛의 휘감음에서 기인한다. 산발적이고 시차를 생성하는 텍스트들에 대한 몽환적인(입체적인) 측면은 어떻게 보면 기차를 타고 있음을 느끼는 것에 더해 미디어-기차라는 소식들의 무분별한 제시의 틈에 끼어, 마치 영화 속에서 포스트잇 같은 정보들을 입체적으로 한 화면에 부착하며 뭔가 큰 그림을 그려 나가는 그러한 과정 자체가 주인공에게 주어지는 것과 같은 그런 경험을 하는 것 같다.


 주기적인 열차의 리듬의 안락함(이는 사운드 베이스가 어느 정도 제공하는 부분이다)과 차창 밖의 ‘특수한 풍경’ 대신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며 긴 약간의 불빛이 있는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는 듯하다. 목소리는 이 기차에 대한 메타 차원에서의 인용이거나 아님 차장의 승객을 위한 목소리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이 목소리를 이루는 ‘무분별한 텍스트’의 방대한 양(에 대한 추정)은 작가의 노고와 함께 압축적인 내러티브의 구조에 대한 ‘머나먼 추정’의 과정으로 섞여들게 한다.


 그래서인지 강연도 준비되어 있다. 열차가 근대를 상징‧상정하는 것이라면 열차로서의 근대라는 정도의 제목으로 된 가상의 책을 만드는 것 역시 재미있을 것 같다.


[Info]  공개강연 「레일웨이 트래블러스 핸드북」 을 둘러싼 철도와 근대   

강연자 : 서해성 소설가, 김아영 작가 일시 : 10.23 (수) 오후 6:00~7:30 장소 : 대학로 예술가의 집 3층 세미나실 2호 주소 : 서울 종로구 동숭길 3 (동숭동 1-130번지) 예약문의(25명 선착순) : 02-760-4715, 010 5369 2873, therailwaytraveler@gmail.com   내용 : 한겨레 신문의 정기 칼럼과 '한홍구 서해성의 직설' 등의 저서를 통해 진보의 발언으로 잘 알려진 서해성 소설가와, 작가 김아영은 그간 철도의 컨텍스트에 대한 논의를 나누어 왔다. 서해성 소설가를 초대해, 19세기 중반 영국에서 개발되어 전 세계로 확산된 철도와 근대의 상관관계, 그리고 철도를 통한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확산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는다. 김아영 작가의 사운드드라마/사운드스케이프와 빛 설치의 공감각적 작업 「레일웨이 트래블러스 핸드북 The Railway Traveler's Handbook」에 나타난 철도의 컨텍스트에 대해서도 함께 논한다.




'아마도 과거의 것'의 현재적 펼쳐짐으로서 지나감


기차 안인지 바깥인지 알 수 없도록 의도된 장치들, 곧 기차 ‘폭폭’ 소리가 뒤에서 들리고, 앞쪽에서 (기관사의) (목소리가 매개된) 방송이 들린다면, 이는 ‘기차 안의 우리 자신’으로, 스스로를 환유할 수 있을 것이다. 곧 우리는 기차를 탄 사람으로 체현된다. 그렇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기차를 환유한 기차 바깥의 풍경에서의 목소리, 기차라는 하나의 소재를 가지고 역사/모더니티에 대한 설명/아니 그에 대한 망령을 불러낸 것이라면, 기차를 (메타-)역사의 환유로 사용한 것이라면, 이는 지나가는 기차를 붙잡지 못한 채 그의 현전을 목격한 것이 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쨌거나 기차로부터 가까이 있다. 우리는 기차를 보며, 기차를 보내주고 있다. 또 다른 기차를 (갈아타지 않고) 타고 있다. 이 다른 기차는 물론 시간과 공간을 가로지르는 것의 부분/매개체이다.


한편 기차(를 가지고 역사)에 대해, 내지는 기차를 타고 있는 우리를 향해, 발화되는 말들은 역사에 대한 유사-재현적인 것들, 지나간 것들의 현전이자, 타임 슬립 속에 한 경험이다. 여기서 현재의 (굳건한) 시간에 대한 ‘주술’은 풀리며, 또한 해체된다. 기차(소리)가 끊임없이 계속되며, 시대와 공간을 잇는 역량으로, 이 현재의 경험-시간을 지속하는 힘이 되는 것처럼, 우리는 현재에 펼쳐지는 것들이 지나가는 것을 듣는다(그것이 ‘현재’인지 ‘과거’인지 ‘미래’인지 모른 채). 이는 이를테면 지나간 것을 현재의 위치에 두는 것이라는 ‘재현’의 굴레로부터 다분히 자유롭게 한다. 곧 김아영 작가의 ‘낯설게 하기’로서의 시공간의 뒤섞음의 ‘어슴푸레한 말들의 향연’은, 단지 소리들만의 지속/섞임은,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시간-몽타주’로 칭할 수 있는 언어(사운드) 장치/기계는 이 현재를 지나간 것으로 바꾸며, 우리를 과거의 현재, 현재에 튀어나온 과거, ‘과거-현재’의 모호한 축을 경험하고 사유하게 하는 것이다. 


(_10.26)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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