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준 2013.10.11 12:52


▲ 프로젝트 남김 <런닝머신> 포스터 [=프로젝트 남김 제공]


어둡고 음습한 듯한 외피, 그럼에도 입구에서부터 확장‧개방되는 시야와 카운터가 주는 안락함까지 지하의 콘크리트 공간은 화이트박스의 부정형으로만은 느껴지지 않는 구석이 있다(말하자면 탈제도적인 공간으로서). 갤러리 정다방 프로젝트라는 이름은 마치 이곳을 다방으로 이질적으로 전유하는 차원을 넘어 ‘정’ 씨란 누군가의 은근한 기획의 풍모를 느끼게 하는 측면이 있다. 곧 기실 장소는 한 군데이지만, ‘새끼치기’를 한 것 같은 느낌을 주며 가상의 여러 공간들을 상상하게 하는 것.


이곳에서 벌어진 ‘프로젝트 남김(Project Namkim)’의 이름 역시 뭔가 오역과 오해의 여지를 많이 두고 있는데, 영어로는 남 킴으로 발음하게 되며(될 여지가 있으며) 우리말로 ‘남김’이라 ‘뭔가의 벌어짐 이후의 (관객의 내지는 그들의) 기억 이미지 정도를 기획하는 비정형의 일시적 집단’이라 생각하게 만든다. 영어식 발음이라면 ‘김남’이란 한 사람으로 정위되고, 나아가 ‘남’은 우리말로는 내가 아닌 타인을 말한다는 점에서 이 이름은 호명하는 순간 타자화하는 효과를 생산한다. 마치 유희처럼. 곧 이 이름은 우리말로는 그 주체를 모호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이런 것이 의도된 것은 아니더라도 아무튼 모호한 작명은 예술가에게는 촌스럽지 않은 것에 가깝다.


프로젝트 남김의 러닝머신은 이 이름이 적절한가에 대한 탐구로 공연을 좇아가다 보면 그 작업이 좀 명확해질 듯싶다. ‘사운드 퍼포먼스’로 이 작업의 성격이 설명되었던 반면, 과연 이 작업을 그렇게 규정‧제한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 역시 큰 가운데, 뭔가 난해하고 또 모호한 이 작업은 결국 러닝머신을 행위를 이끌어 내는 오브제가 아니라, 세계에 대한 유비 관계를 형성하는 주제어로, 또 모티브로 둠에 따라 행위자의 몸 자체를 환유하는 텍스트의 계열을 이루는 지점으로(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러닝머신은 말 그대로 내가 머무는, 나의 바깥을 지정하는, 세계이자 경계이다. 보통 러닝머신을 산업화(‘컨베이어벨트 위의 물건으로서 사람’) 내지는 경쟁 사회의 유비(‘돌아볼 것 없이 뛰어야만 산다’)로 상정하는 게 통상적인 공연에서의 사용인 반면, 이 퍼포먼스는 러닝머신이 자족적이고(그 안에서 나오지 않으려 한다는 점에서) 환상적인(‘주인공’은 여기서 일종의 더 멀리라는 스포츠정신에서 나올 법한 꿈을 꾼다) 세계이고 그 바깥으로 몸이 옮겨 갔을 때를 향한다. 이는 이분법적이기보다 경계 넘기와 모호한 감각 세계를 빚어낸다.


 그 옆에서 계속 내면에서 저울질을 하게 만드는 친구 같은 자아는 일종의 인격적 주체라기보다 ‘더블’을 이룬다. 목소리 역시 외화면에서 투여되며 실상 그것에 입을 맞추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마치 내면의 독백들이 후차적으로 이들을 생각하는 주체로 끼워 맞추게 할 뿐이다. 


이 무력한 퍼포머들은 곧 행위로도 연기로도 주체화되지 않는데 주어진 텍스트 자체의 내재적인 측면에서도 역시 그러하다. 곧 내면(무의식)의 흐름을 따라 비결정되는 의식만이 몸을 감싸고 있고, 이 속에서 관객들은 이들처럼 비주체화되는 주체로 자리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그들이 우리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재현하고 있다기보다 그저 유영하는 자아로 뒤섞여 있다고 보는 게 더 맞을 것이다.


 앞선 모호함은 이런 부분인데, 이 작업이 사운드 퍼포먼스라면 곧 이 정위되지 않는, 해결되지 않으며, 명확하게 내러티브를 형성하지도 않는 이 목소리가 갖는 무게를 내레이션의 형식적 측면으로 소환할 때에야 비로소 가능한 것 아닐까.


하나이자 양분된, 그러나 전적으로 타자가 아닌 둘은 마지막에는 셋으로 분화된다. 러닝머신에서의 달리기는 곧 또 다른 바깥이자 ‘러닝머신’인 스크린 대용이 되는 얇은 흰 천으로 쳐진 공간으로 전이되는데, 이 안에서 그리 특별한 움직임이 펼쳐지는 것은 아니다. 이는 그 안에서 유영하고 있음, 모호하며 모호해질 뿐인 그런 공간임을 보여주는 것에서 족하다.


 처음 나의 세계 바깥에서 사람들(타자들)의 시선을 벗어나는 측면에서 내 길을 ‘소신 있게’ 간다는 어떤 주의는 러닝머신 바깥으로 나왔을 때 실은 아무 것(시선)도 없는 공간에 직면하게 되고 마치 그 시선들 자체와 합쳐지는 느낌을 갖게 됨은 체감되던 외부의 실제적 시선이 실은 나의 내부에 잔존하는 잉여로서의 외부였음을 가리킨다. 하지만 그 내부로서의 바깥은 과연 무엇인가, 나아가 러닝머신에서 곧 고착된 자아에서 내려오고 나서 더 이상 ‘우글거리는’ 또 하나의 목소리가 없음은 대타자가 없는 ‘해방된 자아’ 그 자체일 것이다. 반면 다시 그 바깥의 시선들이 육화되는 지경은 어떤 단계인가.


퍼포머가 관객들을 향해 다가오며 그 시선들을 머금으며 관객에 흡착되어 갈 때의 경험적 순간은 그에 대한 실제적인 해석의 단초를 제공한다. 


이 시선들이 육화되고, 다시 그 바깥, 가령 각각 공간 내부‧외부의 이층으로 옮겨가며 끝나는 끝에서처럼 세계는 자아와 타자의 가상적‧실제적 접면의 차원에서 전이되며 확장되고 또 멀어지는 것 아닐까. 


P.S. 모호한 텍스트들을 그냥 흘려보내고 나니 그것들을 붙듦으로써 정교한 순환적 구성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이 뒤늦게 든다. 그저 자유연상기법에 따른 시간 죽이기라고 어느 정도 단순하게 생각하고 만 것에 대한 아쉬움이 이는 지점.


P.S 2 정다방 프로젝트, 그리고 남김 프로젝트에 대한 바는 인상비평에 가깝다. 


[Info] Project Namikim은 사운드 퍼포먼스 아트 그룹이다. ‘공간’을 주제로 사운드와 다양한 소재를 이용하여 관객과 소통을 예술적 가치로 창출한다. ‘사운드’라는 매체를 통해 공간과 공연의 틀을 넘나들며 관객들로 하여금 상상과 일상의 경계를 마주하게 된다.


홈페이지 namkim2lee.tumblr.com 

페이스북 www.facebook.com/ProjectNamkim

이메일  namkim001@naver.com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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