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준 2013.03.27 23:55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정형민)은 한국 현대추상회화의 대표적인 원로 작가 윤명로(1936~)의 50년 화업을 총망라하는《윤명로: 정신의 흔적》전을 오는 6월 23일까지 과천 본관 제2전시실 및 중앙 홀에서 개최한다. 각 시대별 대표 작품 및 최초 선보이는 대형 회화 신작 등 총 60여 점이 공개된다.


이북에서 월남한 윤명로 작가는 남북 분단의 시기를 어린 시절 직접 겪었다. 사범학교 시절 그렸던 그림에서 칭찬을 받고 작가의 소질을 발견하게 된 이후 ‘환쟁이’라는 화가에게 부여된 편견이 자리하던 시절,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지원한 서울대학교 미술학과에 합격하게 된다. 사르트르나 카뮈로 대표되는 실존주의가 크게 지배하던 대학 시절에 작가가 접한 사르트르의 소설 『벽』은 ‘인간의 존재’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선사했다.


이후 ‘국전’이 세계 조류에 비해 고루하게 느껴졌고, ‘60년 미술가협회’를 몇몇 작가들과 창립해 덕수궁 담벼락에서, 당시로서는 기성의 권위에 도전한 획기적인 전시를 기획했다. 장학금을 받고 간 미국으로 유학을 갔을 때 실존주의가 아닌 자본주의가 지배하고 있었고 완전히 다른 이 세계를 작가는 “루이 암스트롱이 달을 밟았을 때와 비슷한 충격을 받았다”고 전한다.


작가는 십년간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작품을 하다 스스로 지루해지면 못 견뎌 하는” 까닭에 실험적인 작품의 세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원동력으로 꼽았다.


작가에게 중요한 모티브가 된 것은 “결국은 자연”으로, 네 발 달린 송아지도 자연이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이 자연을 소재로 그린 자신의 그림들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사회에 위안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추영 학예연구사의 소개를 따라 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10년 단위로 묶인 전시를 구성해 본다(이후 인용은 이주영 학예연구사의 말에 해당한다).


초기 60년대 작업에는 원시성에 관한 뿌리에 대한 생각이 작가를 지배했고, ‘제의적이고 환상적인 모습을 상기시키는 작품’들을 만들게 된다. 작가는 유럽과 미국의 앵포르멜 추상회화의 동시대 경향을 한국적인 방식으로 수용한다.


70년대 ‘자(Ruler) 시리즈’는 제목이 ‘자’와 ‘군주’를 모두 의미하는 것처럼 자를 작품 안에 그려 넣고 물감의 균열을 이용해 권위가 무너지는 것을 상징하는 작품을 만들고, ‘크랙(crack) 시리즈’를 통해 물감의 균열을 전면에 드러낸다. 기존의 물감 위에 빨리 마르는 물감을 덧대면 자연히 크랙이 형성되게 된다. 


80년대 들어서는 ‘경쾌하고 날렵한’ 화풍의 ‘얼레짓 시리즈’를 만들게 되는데, 모포는 물감을 흡수할 수 있는 소재의 특성을 지닌다. 90년대에는 유화물감으로 자연이 갖고 있는 경외감 등을 폭발적인 액션으로 드러낸 ‘익명의 땅 시리즈’를 선보이고, 9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작품의 자연이 안온한 양상을 띠는 변화의 흐름을 보이게 된다. 

 

2000년대에는 겸재를 자신의 작품 세계로 끌어오며 “우리가 갖고 있었던 사상이나 세계”를 다시금 가져와 무분별하게 외국의 경향을 도입하는 것을 경계하고자 했다. 단번에 그려 나가는 방식으로 작품들은 단순화되고 많이 비워진 모습으로 드러난다. 이는 흡사 “자연이 갖고 있는 풍부한 이미지를 연상하게” 한다.


“내 그림은 랜덤이다. 랜덤이란 더 내면적인 공간으로 접근하려는 숨결이다. 마음대로 형성되는 무질서가 아니라 충분한 사고 끝에 나타나는 저인의 흔적들이다.”(윤명로)


“명상적으로 작품을 접하게 하고 싶었다”, 마지막 섹션에는 전시장의 실내를 벗어나 채광이 되는 공간에서 푸른 카펫을 밟으며 관람객으로서는 편안한 느낌을 주는 공간 안에서 작품들을 구경하게 된다. 한편 작품을 그린 아크릴 물감에는 펄 성분이 들어서 빛을 반사하는 특성에 따라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느낌을 선사하게 된다. 


작가의 작품들은 50년간 그 형태나 매체의 사용에 있어 커다란 차이의 흐름을 보여 왔다. 그리고 이는 다른 매체를 전용함에 따른 어느 정도의 결과이기도 하다. 작가는 매체의 중요성에 관한 일례로, 58년 아크릴이 미국에서 첫 생산됐고, 그로 인해 팝아트 역시 탄생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유화의 경우 물감이 마르고 있는 것을 기다리다 보면 빠른 작품들이 대량 생산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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