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준 2013.01.23 11:33

육완순 현대무용 50년 페스티벌이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열리는 중이다. 육완순은 1963년 한국 최초로 미국 현대무용을 도입하고, 그해 9월 25일 제1회 육완순현대무용 발표회를 국립극장(현 명동예술극장)에서 가졌다. 이후 국내 무용계의 일익을 담당해 온 육완순의 50년간의 활동을 기념하며 이번 페스티벌이 마련됐다.

특별히 한국을 빛낸 국내외 현대무용가의 작품들의 5개 정도의 묶음 공연이 27일까지 계속된다. 참고로 모든 공연은 만원에 불과하며, 공연이 끝난 직후 육완순은 직접 무대 인사를 하며 관객을 맞이한다. 대부분 국내에서 공연된 것들이지만, 서로 다른 개성의 안무가들을 한데 만나는 기회로는 긍정적이다. 한편 이번 페스티벌을 위해 특별히 해외에서 한국을 찾은 안무가들도 만날 수 있다.

다음은 19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열린 공연들이다.

가자!, 장정은

장기하와 얼굴들의 ‘달이 차오른다’가 무대를 풍성하게 채운다. 꽃무늬 원피스에 스카프는 70·80년대 의상을 떠올리게 한다. 거기에 노래방의 미러볼 무늬가 새겨지고, 다양한 연령대가 섞인 한결같은 복장의 이들은 아줌마와 처녀의 어떤 경계에 있다.

방방 뛰는 기운은 봄의 에너지가 물씬 나게 했는데, 치렁치렁한 옷과 풀어헤쳐짐, 어떤 일탈과 광기의 경계에서 부푼 마음에 따른 동선이 자연 출현했다. 관객을 향할 때 얻는 자유로움이 음악의 효과와 함께 상승하는 부분도 있었다.

여기에 돌연 개울 스케이프가 무대에 장착되는데, 장기하의 노래를 그 자체로 전유하는 것에서 강이라는 매우 이질적 오브제를 접합하는 것이다. 강과 더불어 무대에 풍선들로 부풀어 있는 나무를 그려내면서 그 곁에서 노는 가상적인 리얼리티를 만들었다. 여기에 옷을 벗어 물이 곧 신체에 닿는 신체와 물이 하나가 되는 체현의 단계를 성립시켰다.

무대는 무엇보다 싱그럽다. 여성적 공간이 만들어지고, 나들이하는 여자의 일탈들과, 자연에의 의지와 자연으로부터의 싱그러움이 풍요로움으로 이어지는 혼돈과 아름다움이 생성되는 게 이채롭다. 물론 각자 다른 나이 대의 중첩은 이 여자들의 정체를 신비하게 몰아간다.

발자국, 예효승

전에 본 작품이기도 한데, 현존을 불구의 신체로까지 끌어오며 내밀한 슬픔을 밀도의 표현으로 치환하는 공연이라 하겠다. 내레이션으로 나오는 슬픔에 젖은 목소리는 이 신체성과 궤를 같이 한다.

이 몸은 그럼에도 이 노래에 맞서고 동시에 그것보다 두꺼운 층을 만든다. ‘불구되기’라고 할 수 있는 접힘과 구김, 가령 접힘의 기억을 반복하면서 몸으로부터 체현하거나 하지만, 한 번도 제대로 된 펼침이 없다. 오히려 펼침은 접힘과 중첩되어 몸에 내재된 에너지로 남는다.

'Rotten apples' 중에서, 차진엽

‘요염함의 도상’, 어깨를 부풀려 과시의 몸짓, 그리고 어떤 ‘중세 귀족’의 알레고리(분명 다른 시간대)를 가져간다. 사과를 든 윌리엄 텔의 도상이 이어지기 때문에 이는 조금 더 명확해진다. 이어 차진엽의 움직임과 시선이 따라 붙은 이 사과를 욕망의 상관물로 변화시킨다.

분절되는 사운드는 드레스를 쳐들고 뛰는 여자로 분해, 어둠의 숲을 지나는 서사의 현재 시간이 환상적인 공간으로 빚어진다. 옷을 갈아입고 나온 차진엽은 이제 중세 하녀의 도상을 전유한다. 타자치는 소리와 수신호, 그리고 분출은 하나의 언어를 쓰고 새기고 현전하는 인간문자가 된다.

어떤 영화적 감각, 멀티미이어적 감각이 그 자체로 서사와 결합하는 방식이다. 신비한 사운드에 말발굽소리, 여러 매체들이 ‘기억의 몸’에 지나가는 통로, 곧 매체들이 체현되는 통로가 된다.

몸을 쓰다듬는, 손이 훑고 가는 몸의 자취가 곧 몸이 되는 움직임, 공기와 숨, 시선 이런 여러 다중의 것들을 입체적으로 그려내는 움직임이다.

'승무' 중에서, 장정윤

제의적인 측면이 다분했는데, 칼 같은 긴장과 시선, 북소리의 위용에 맞춰 움직임은 다소 뻣뻣해 보이는 부분이 있었다. 북에는 프리재즈 같은 드럼의 은근한 난입이 있었는데, 북을 치듯 움직임의 결에 변화를 줬다.

음악은 반주 차원이고, 몸이 갖는 어떤 개인적 품격과 정신은 이 음악과는 별개로 유지되고 지속됐다.

Two-chairs, 이정희

의자에 쏘이는 조명은 이 ‘자리’에서 뭔가가 벌어질 것임을 환기했다. 음악은 묵직한 종 같은 두드리는 현악기로, 아시아의 악기로 보인다. 내지르는 알싸한 구음에 단출한 무대에 간결한 동작에 방점을 둔 포즈들의 연결은 지속된 긴장 속에 ‘이완으로서 몸’, 동시에 심각한 수수께끼의 몸의 전환들의 궤로 이어진다.

음악이 비워졌을 때 남는 현존은, 이 수수께끼를 흑백 사진의 실제 사진들로 옮기며 시간의 현존으로 옮기며, 앞선 그 (빈 자리에 대한) 수수께끼를 푼다.

어머니에서 딸로 이어지는 춤은 앞서 먼저 등장했던 중년의 여자의 삶의 우선함을 가리키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그 어머니가 퇴장한 이후 돌아올 수 없는 시간과 자리로서 의자를 바라보는 딸, 그에게 있어 되돌아 올 수 없는 흑백의 시간들의 알레고리가 의자의 맥락과 맞물리며 슬픔을 자아냈다.

움직임은 감정을 거스르는, 움직임을 뚫고 나오는 감정이 하나, 그리고 그럼에도 그 신체에 달라붙는 부분이 곧 이중의 상호 작용을 하며 가슴을 치며 턴 후 동작의 시작을 재반복한다. 조명의 어둑해짐이 시간의 무상함을 환기시키며 먹먹해지는 슬픔을 끄집어냈다. ‘죽음이 올 때까지 춤춘다’는 춤의 숙명이라는 부분까지 합산하며.

지나간 기억의 그림자, 조윤라

여자는 얼굴을 돌리고 있다. 시작할 때 두 남녀 만남은 어떤 트릭이었다. 젊지 않은 나이에 열정적 음악 아래 두 젊은 남녀의 춤의 전형을 보여준다는 것에 놀라움이 있었다. 위태로운 격차가 있는 탱고 음악을 전유한 채 발레의 기본 동작들을 무난히 소화하며, 어쩌면 무용(발레)이  춤의 나이가 아닌 그 세월의 얼굴에서 확인해서는 안 됨을 무의식적으로 금기시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길 위에, 조은미

은근한 스포트라이트가 가해지면서 혼란의 분위기가 가중되다 이윽고, 피아노의 풍요로운 그리고 정형화된 음악에 율동을 가동시켜 마치 음표와도 같은 배경처럼 몸은 녹아들었다.

가지를 묶어 의례의 상징적 장식물을 든 여자와 함께 등장한 여자는 계층의 서사를 만든다.
역동의 장은 변전하고 있었지만 시간이 짧았다.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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