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준 2012.06.26 10:34

삶과 연극 사이에서 저울질하다

▲ 연극 <다정도 병인 양하여> 최종 리허설 사진 [제공=국립극단] (이하 상동)

작품은 일종의 워크숍 북이자 연출이 작품에 끼어듦으로써 메타적 시선을 확충하는 한편(메타 연극의 면모를 가져간다고도 하겠다) 마지막에서는 더군다나 삶을 고스란히 시현함으로써 다큐멘터리 연극의 형태를 사적 연애 방담에 과감히 녹여 버리며 삶과 연극을 위태롭고 또 가볍게 저울질한다.

얼마나 연극이 삶에 다가가며 그 생생함을 체현할 수 있을까의 화두는 삶이 예술로 파고드는 자유로운 경계를 확충하는 데로 나아가지만 이 생생함의 재미, 사적 방담과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더할 나위 없는 엔터테인먼트의 요소 속에 삶은 빠르게 흡입되며 또한 소진된다.

어쩌면 이후 성기웅의 로맨틱 서사는 관객에게 사적 방담의 사실을 묵인한 사적 방담의 경계에 서 있다는 생각을 전하거나 사적 방담에 미치지 못하는 재현의 층위에 머문다는 생각을 전하게 될지 모른다.

폴리아모리의 은폐된 수용

다정多情은 정이 많다는 뜻이지만 이를 폴리아모리polyamory, 다중 연애 선호자로 풀고 다시 성기웅의 옛 그녀의 이름으로 삼으며 <다정도 병인 양하여>는 누군가에 대한 과한 내지 부푼 상념을 독특한 현대의 연애주의자를 다룬, 거의 시사용어에 가까운 명제로부터 가져오며 전환한다.

이 체념 상태에 빠진 다정의 상태는 이 연극의 가장 명확한 윤리적 부분이다. 다정이라는 외부성‧타자성을 늘 숙제로 안고 갈등하며 그녀를 이상한 내지는 알 수 없는 타자로 바꾸며 전유하는 과정은 이 폴리아모리의 여자를 사랑하는, 마찬가지 폴리아모리의 사고를 허용하며 그녀(의 사고를 포함한)를 자연스레 허용할 수 있음으로, '자신의 구질구질한 상태를 합리적이고 쿨한 사고로 은폐하며 남는 현실의 공허'를 '늘 첫 번째 애인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다정에 대한 행동을 공격하는 것으로서의 합리적 사고'로 가장한 채 화를 내며 '전체를 소유하지 못하는 것의 애초 폴리아모리에서 그가 도출한 명제'를 은근하게 드러낸다. 이 부분마저 은폐는 불가하다.

폴리아모리(앞서 말했듯 이 명제의 정의 자체에 그다지 긍정을 표하지는 않지만)는 불가능한 것일까 다정은 오히려 상대방에 대한 매우 자연스런 감정의 공유를 실천했다고 보인다. 첫 번째 애인의 급인 남자와의 일은 그것을 용인하고 만난 남자의 자연스런 이해가 사실 (극 중 성기웅에게는) 은폐되어 있지만 (극 중 다정은 성기웅과 자신 사이에) 전제되어 있다고 생각하며 오히려 가장 많은 중심이 되고 많은 일들을 겪었으리라 당연히 생각할 수 있는 그 일들을 그와 공유하는 것이다.

여기서 이를 극 중 성기웅과 또는 과거의 어느 성기웅으로 표상되는 존재(어쨌든 이쯤 되면 실제와 극의 경계는 묘연해진다. 극은 실제의 시뮬라크르인 셈인데 실제는 이 시뮬라크르를 통해서만 그 실제가 있음이 증명될 뿐이기 때문이다)와 나누는 것은 먼저 자신의 전체성을 몸의 감각들로 조금씩 더딘 시간의 두께 위에  쌓아 놓는 과정에 가깝다. 이는 그녀를 동시에 감각적으로 또한 온전하게 드러내는 방식이다.

그녀가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반면 이 말들에 존재하지 않는 그녀 애인이 그녀의 사유 속에 존재한다는 말로 성기웅은 삼각관계 내지는 그녀의 전체성을 윤리적 차원의 의무와 당위로 규제한다. 그렇다면 폴리아모리라는 개념은 실제 폴리아모리를 조금 더 지향하지 않는 또는 그런 척하는 사람에 의해 결국은 실현 불가능한 것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농후한 예를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애인은 과거의 기억이 아닌 현재다. 곧 과거의 얽매임 따위가 아니라는 점을 혼동하지 않을 필요가 있다. 애초에 전체성을 드러내지 못하는 오히려 이를 수집하고 다른 매체 곧 연극이나 희곡 텍스트나 그 재료로 전환하는 소심성과 그 재주를 지닌 성기웅으로서는 '이 현재에 모든 이야기를 전하고 또 망각하는 다정과는 다른 인간의 유형으로 그녀의 호의'에 사실상 폴리아모리에 대한 합리적 사고로써 용인이 아닌 부분에서 전체로 나아갈 수 있다는 막연한 희망을 무의식에 잠재해 놓고 그녀를 소유하기 시작했었을 수도 있다.

재현을 넘어 실제를 구현하다

극 중 성기웅에 대한 부정은 오히려 이 연극을 쓴 성기웅에 대한 윤리적 판단의 측면까지 나아감은 성기웅이 삶과 연극을 교차시키고 또한 마지막에는 합치시키는 결과로까지 나아가기 때문이다. 다정의 원망까지 연극의 결말에 기입해 놓음으로써 오히려 사적 영역을 공적 영역으로 돌린다.

마지막에 이 연극에 쓰인 실제 다정과의 대화를 배우들이 재현하는 장면 곧 성기웅 연출이 이 연극을 기획하고 무대에 올리게 된 이후에 다정에게 다정과의 일들이 이만큼 진득하고 구질구질한 성기웅의 시선 속에 새롭게 조망됨을 확인한 이후에 결혼한 다정의 동의를 구하는 과정에서 원망을 넘어 비탄과 체념 상태에 빠진 다정의 상태까지를 모두 연극에 고스란히 뿌린다.

일종의 원망으로 드러나는 이 부분은 우리가 이 연극을 보며 자의적으로 판단하거나 은밀하게 그녀를 연극 속에서 바라보던 우리에 대한 윤리적 태도까지를 요구한다. 앞서 말한 그녀라는 외부성이 성기웅의 은폐된 마음 공간 외부로 허덕임의 태도들로 그녀의 허상을 소유하며 빠져 나가던 가운데 현실에서 일순간 제자리를 찾으며 관객을 찾아온 터다.

지극히 사적인 방담은 그녀가 재현되며 출현함으로써 진정 현실의 영역과 긴장을 맺으며 성기웅이라는 에고, 그를 따르던 관객의 나르시시즘을 깨뜨린다.

어디까지 사적 방담은 허락될 수 있을까, 허락보다는 까발려질 수 있을까. 보편의 이야기로 돌리기 전에 성기웅은 오히려 자신을 이 연극 안에 놓고 같이 지켜봄으로써 곧 관객의 시선을 선취함으로써 무엇보다 자신을 위해 자신의 에고 트립을 감행하고 나르시시즘을 지속시킨다. 하지만 객관적 관찰 행위가 여기서 얼마만큼 소산되는지는 알기 어렵다.

사족과 불안정 지점

보통 2부가 되면 연극은 정리되지 않은 장면들이 정리가 되고 연극의 이념은 조금 더 확실해진다. 반면 탱고를 배우는 시간으로 주인공들이 아닌 이 연극에 참여한 조연 배우들의 메타 연극을 이루는 과정 속에 푸념들로 그 시간이 시작되는 가운데 오히려 늘어지고 일부의 긴장감을 유예시키고 그로부터 벗어나 사족으로 머리 식히는 시간을 만드는 것만 같다. 지나치게 러닝타임이 길다.

한편 배우들의 탱고 솜씨가 그다지 유려하지 않다. 연극 속에 춤은 연극을 닮아 있어야 한다. 반면 이 연극 속에 탱고는 연극 위에 또는 연극 옆에 부과되는 탱고 그 자체여야 더 흥미진진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 탱고는 매우 서툴다. 다정 역을 한 두 매력적인 여배우에서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배우 이안나의 춤은 너무 뻣뻣해 감질 나는 탱고의 맛을 전혀 살리지 못하는 아쉬움을 준다.

[공연 개요]
공연명 <다정도 병인 양하여>
공연기간 2012년 6월 9일(토) ~ 6월 24일(일)    시간 화~금 20시/ 토, 일 15시/ 월 쉼 
장소 소극장 판
작, 연출 성기웅
스태프 미술감독 및 무대 | 서지영, 기술감독 및 영상 | 윤민철,  음악감독 | 변준섭/박태성, 조명디자이너 | 민새롬,  의상디자이너 | 홍문기, 소품디자이너 | 김다정,  드라마터그 | 김슬기, 땅고지도 | 양동탁, 조연출 | 민새롬/김현숙,  제작감독 | 박다솔, 프로듀서 | 강민경
출연 오용, 이화룡, 양동탁, 마두영, 이안나, 연보라, 김희연, 성기웅
예술감독 손진책
제작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 (재)국립극단 관람료
공연 문의 및 예매  인터파크 www.interpark.com | 1544-1555 국립극단 www.ntck.or.kr l 1688-5966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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