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준 2012.06.22 16:48


Intro

<죽은 남자의 핸드폰> 콘셉트 촬영 사진 [제공=맨씨어터] (이하 상동)

<죽은 남자의 핸드폰>은 사라 룰(Sarah Ruhl) 원작의 일종의 번역극인 셈인데 이는 문화적 차이(시공간의 다름)를 상정한다. 모든 다른 국적의 극을 우리 것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공통부분이겠지만 번역이 드러나는 부분은 다름이 자연스러움으로 비치지 않는 부분, 원작에서 우리 극으로 옮기면서 드러나는 그 옮김의 행위가 매개라는 이름으로 드러나는 부분이겠다.

다른 국적의 이름과 우리의 음식에 대한 언급은 현실과 원작이 전도된 평면을 맺는 가운데 그 매개의 행위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만다. 반면 이런 사소한 결벽증에 가까운 지점들을 제하고 이 작품은 꽤 우리의 현실을 사유하는 의미들을 공유한다. 곧 핸드폰에 얽힌 세속을 상정하며 그를 철학적으로 반추해 내는 것에 가깝다.

핸드폰을 통한 현실에 대한 사유

핸드폰을 사유하는 건 우리의 삶을 또한 매체를 시대를 사유하는 것이라 하겠다. 공기를 가로질러 전파를 통해 전달되는 목소리와 문자는 연극에서의 언급처럼 수많은 공기 속에 보이지 않는 잠재된 형태로 증발하며 순간적으로만 보이지 않는 다른 형태로 자리할 것이다. 이 공기는 곧 전파의 매질은 생각지 않게 지구촌을 순식간에 간격과 균열 없이 형성한다. 반면 여기에 전파 기지국이 없는 공간을 은폐하는 자본주의적 논리가 살아 숨 쉬고 있다. 이 공기 덩어리는 자본의 영역에 의해 통제된다.

연극 속 제시된 우리가 각자 자신만의 마차를 타고 가며 그 바깥으로 건너가지 못한 채 자신의 존재 안에 갇혀 최후를 맞이하는 찰스 디킨스의 명제에 대한 풀이는 일견 주체할 수 없는 운명의 힘과 존재라는 집을 마차로 비유한 것을 새삼스레 감각케 하는데 이 마차를 대체하는 게 이 작품 속에서의 사유를 통해 휴대폰이라고도 하겠다.

존재의 집

휴대폰은 한 마디로 존재의 집이며(하이데거의 표현대로라면 휴대폰에서 거주하기를 우리는 실천하는 것이다) 그 번호가 무엇이었건, 휴대폰의 기종이 무엇이었건 간에 자신을 둘러싼, 스스로 그것에서부터 벗어날 수 없는 무엇이다.

이는 시간과 공간을 잇는 동시에, 자신의 시간과 공간을 현재 소거시키는 이 단순한 전파의 흐름이 전달하는 동시성의 공유라는 그 역량에 있으며 그 역량 하에 타자의 호출은 절대적이며 자신은 휴대폰을 지닌 자신으로 이 사회 속에서 기입되며 또한 이를 통해 자신은 살아 있는 존재로,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지 않는 대부분의 시공간에서 관계의 평면을 공유 가능한 이로 자리하게 된다는 것이다.

죽은 자를 대리하다

이를 다시 마차로써 인생을 비유하는 명제와 비교하자면 이 명제는 작품 속에서 휴대폰 안에서 등장인물이 죽는 것 외에 타자와의 관계와 공기가 형성하는 지구촌의 가상계적인 전제는 전혀 설명해 내지 못한다.

이십세기 초에 등장한 전화와 그 보급은 디킨스의 시대와는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휴대폰은 그 주인이 실은 노예가 죽는 순간 그 죽음까지를 주재하지는 못한다.
<죽은 남자의 핸드폰>은 드디어 존재의 집을 벗은 존재가 (실은 이 존재에게 여전히 떨어지지 않고 울리며 그를 살려두고 있는 상황의 아이러니가 존재하지만) 즉시 부재함에 떨어질 때 이 죽음을 겪는 산 자들을 달래기 위해 산 자의 기억을 연장하고 또 재배치할 수 있는 근거들을 죽은 자와의 친분을 가정한 그의 살았을 적 기억들을 지어내서 제시함으로써 죽은 자를 대리하는 지점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진(배우 정수영)은 왜 죽은 남자 고든의 삶의 대리인을 자처했을까. 휴대폰은 그 남자가 거주하던 공간이었고 그것을 실제적으로 성립케 하던 전화에 그녀가 자리하면서 그녀는 그의 영혼에 접근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이 집(휴대폰)을 소유함으로써 그녀는 그의 영혼에 자연스레 드나들 수 있는 일종의 영매라고 생각하며 그 가상의 영역을 신념과 신뢰를 수반하는 지속적 행위로 매워 갔다.

차원 이동의 세계

각 개인에게 할당된 휴대폰을 선취함으로써 불가피하게 그에게 걸려오는 자와의 매개를 만들던 그녀의 삶 너머로 애초에 말없이 죽었던 자의 시선을 통해 객관화의 평면을 얻기 위해 남자는 부활한다.

이를 접신이라기보다 차원 이동으로 보아야 할 것인데 남자는 죽기 직전의 진실을 전한다. 남자는 불법 장기 밀매업자인데 그는 생명과 생명을 잇는 자기 합리화의 언설을 이 가상화된 공기 덩어리 휴대폰 영역과 맞물려 교환 경제(장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만큼 절대적으로 돈이 필요한 누군가가 만난다는 가정 아래)의 성립 속에 둔다. 휴대폰은 사람과 사람을 잇는 가교로서 역량을 지닌다.

애초에 도시 빌딩에 둘러싸인 공간에서 하늘을 올려다봄의 시각으로 둔 무대 배경은 초현실주의적 인상을 주는 가운데 무대에 위치하는 사람들을 익명의 도시인으로 휴대폰이라는 섬 안에 갇힌 소외를 겪고 있음을 전하는 장치이다. 이는 조명에 따라 변화하는 일종의 파사드인 셈이다. 이 하늘은 소유할 수 없는 영역을 상정하고 어둠이 깔린 후 지옥의 입구로서 차원 이동의 경계 영역으로 변한다.

메타 현실의 우화

이십 세기 폭발적인 인구 증가와 함께 도시 공간을 겪은 사람은 너무 많은 사람으로 현기증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반면 우리는 단적으로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할 시에나 광장에서 그 수많은 사람들을 대면하지 않고 익명으로 쉽게 흘려보낸다. 여기에 휴대폰은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천연덕스럽게 드러내며 여기에 없는 이와 동시성을 즉각 생성해 낸다.

결국 이 작품은 이러한 당연하게 된 광경에 대한 의구심을 제시하며 시작되고 죽음에서 삶(애도의 영역)에서 다시 죽음에서 삶으로 가는 비현실적인 구조를 통해 존재의 집을 벗어난 영역에서 삶의 본질 내지는 실재를 만나기 위한 메타 현실의 우화를 창조해 낸다. 지옥은 그런 의미에서 실재계에 가깝게 제시되고 이 지옥과 현실의 사실 여부는 이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전제이므로 그렇게 중요하지 않게 된다.

불가침의 영역을 점유한 데서 불가해의 경계‧전이 영역으로 이전하는 여자의 과정 그리고 휴대폰을 통한 인류와 세계에 대한 통찰과 비평적 시선은 예측 불가한 지점으로 전환되어 간다는 점에서 희극 곧 우화다. 이를 에피소드가 아닌 또한 말의 삽입 문구를 통한 비평이 아닌 차원에서 근원적인 인간에 대한 통찰로 이전할 수 있는 여지는 없었을까 의문을 낳는다.

[공연개요]

공 연 명 :  연극<죽은 남자의 핸드폰>
공연기간 :  2012년 6월 9일(토)-6월 24일(일)
공연장소 :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공연시간 :  화~금 8시/ 토 3시,7시 / 일 3시/ 월 쉼
티켓가격 :  일반 35,000원, 학생(대학생포함) 25,000원 
관람등급 :  만 13세 이상
러닝타임 :  1시간 50분
      작 :  사라 룰 (Sarah Ruhl)
연    출 :  박근형
번    역 : 정호진
출    연 :  정수영, 황영희, 정재은, 우현주, 김주헌
스    텝 :  이우천(조연출) 황수연(무대) 김창기(조명) 박민수(음악)
            백지영(분장) 최효정(기획)
공연문의 :  02-3443-2327
공동주최 :  한국공연예술센터, 극단 맨씨어터
후    원 :  서울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파라다이스문화재단, 한국메세나협의회,
협    찬 :  디자인포커스
예 매 처 :  인터파크, 한국공연예술센터, 클립서비스, 옥션, 사랑티켓, 대학로티켓닷컴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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