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준 2012.06.15 12:35

'오직 한 사람을 위한 무대'

▲ 14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강수진 &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까멜리아 레이디> 드레스리허설 1막 현장

사십 분의 1막이 지났다. 드레스리허설로 치러진 무대, 하나의 공연이 이토록 한 사람에게 집중된 공연이 또 있을까, 강수진에 의한, 강수진을 위한 공연은 강수진에 대한, 강수진을 보기 위한 공연으로 한껏 그 설렘을 부풀려 갈 때 강수진의 드레스리허설을 본 공연에 앞서 미리 살짝 만나 보는 것은 그 기대의 연장선상에서의 기대이자 그 기대에 부응하는 기대이기도 했다.

스태프들과 언론은 상대적으로 객석의 뒤편에 위치해야 했고 약간은 물끄러미 무대를 바라봐야 했다. 사진을 급선무로 하고 정신없는 시선으로 시간은 흩어졌다. 참고로 사진 찍는 것은 순간을 분해하는 행위이며 시간의 연속됨을 통해 충분한 해석과 경험을 허락하지 않는다.

▲ 14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강수진 &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까멜리아 레이디> 드레스리허설 1막 현장

무대에 갖가지 소품이 치워지는 것으로부터 무대는 시작했는데 현실은 그렇게 해체되며 현실과 무대의 경계를 묘연하게 흩뜨렸다. 중간에는 강수진의 얼굴을 담은 초상화가 있었다.

강수진이 주요하게 무대를 채우기보다 오히려 그녀보다 젊은 외국 무용수가 그 무대를 채우는 것을 강수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무대가 채워졌는데 자연스레 (관객으로서) 강수진에게 쏠리는 시선은 이 무대의 움직임을 직접적인 맞닿음보다 오히려 환영처럼 흘러가는 무대 안의 무대로 끼워지는 바가 컸고 동시에 이 시선의 엇갈림 속에 엇갈리는 욕망이 생성됐다. 발레리나는 극 중 강수진을 대리하는 그녀의 페르소나이기도 했고 강수진이라는 괴물을 예비하는 단계에서 주어진 존재이기도 했다.

극 중 극 같은 강수진이 앉아 있고 삽입되는 이 무대는 계속해서 강수진이 등장하고 난 이후에도 강수진의 무대를 대체하고 들어났다.

강수진의 호출을 기다리는 무대

▲ 14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강수진 &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까멜리아 레이디> 드레스리허설 1막 현장

이 극 중 극 같은 무대는 그러니 강수진이라는 실재에 대한 목마름이자 환영으로 작용했는데 강수진은 적어도 1막에서는 크게 움직이지 않고 역설적으로 크게 움직였다. 이미 그녀를 내용적으로도 또 강수진 그 자체만으로 이 공연이 갖는 의미에 이 공연을 찾는 현실적인 층위에서도 강수진에 대한 주목은 그녀를 세세하게 더 들여다보게끔 했는데 강수진은 표정과 손짓으로 이미 그녀만의 무대가 된 무대와 그녀만의 세계가 된 이 현실에서 그저 존재했다.

여기서 정녕 까멜리아 레이디는 존재하는가. 이미 까멜리아 레이디인 강수진이 있어 이 무대는 완벽한 것이었다 말하는 것에 그칠 수 있는가. 이미 강수진이 까멜리아 레이디의 존재를 초과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는 어떤 일치나 합치의 문제가 아니다. 곧 역할은 하나의 유명론적 측면을 뛰어넘지 않는다.

▲ 14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강수진 &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까멜리아 레이디> 드레스리허설 1막 현장

여기서 강수진의 공연은 이야기의 재현이 아닌 강수진이라는 그녀 스스로의 현실과 실재를 확인하는 차원으로 전환된다. 가령 지젤에서 김주원을 볼 때 그 탁월한 연기를 볼 때 온전한 지젤의 상을 얻게 된다. 그렇지만 김주원에 대한 찬사는 이 상 이후에 돌아오는 후차적인 인식의 측면이다.

마치 까멜리아 레이디는 극 중 극과 같은 보조적인 차원의 무대들이 그녀만을 위해 숨을 죽이는 것 같은 광경 속에서 그녀의 시선을 우리와 함께 보는 환영의 현실로 돌림으로써 우리의 시선으로부터 미끄러지며 생성되는 그 엇갈림의 관계에서 욕망하고 다시 그녀가 무대에 설 때 이 무대를 넘치는 강수진의 존재감을 느끼는 그런 일련의 과정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친숙하면서도 낯선 존재, 강수진

▲ 14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강수진 &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까멜리아 레이디> 드레스리허설 1막 현장

사실상 1막만으로 공연을 어떻게 조망하겠는가 하지만 이 공연을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다시 보편적 차원이자 현실의 차원에서 조망해 볼 수는 있을 듯하다.

가령 무용 공연은 한번 내지 두 번의 공연으로 그친다. 독일에서 활동하는 강수진의 무대는 사실상 더욱 진귀한 경험이다. 이 경험은 일 년에 한 번도 채 공연을 보지 않는 우리나라 국민들에게서 또한 무용계 인구가 조금은 더 간다고 해도 크게 그녀를 가깝게 전유하기에는 그 언론의 관심과 대중의 관심에서 매우 소수의 사람에게만 국한된 무대일 수밖에 없다.

▲ 14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강수진 &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까멜리아 레이디> 드레스리허설 1막 현장

연극은 한 달이라도 장기 공연을 하는데 무용은 일 년을 준비해도 하루 이틀이면 그친다. 강수진에 대한 열광은 사실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그저 들리는 풍문일 뿐이거나 공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대부분 아쉽고도 야속한 하나의 소식이지 않을까 여기에 전막은 우리나라에서는 마지막이라는 말은 차라리 이 강수진에 대한 뜨거운 국내 열기를 상업적 전선과 결부시키는 것이면서(이번에 못 보면 말짱 황이라는) 이 공연에 대한 대중과의 엇갈림을 오히려 가시화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게 강수진은 우리에게 많은 무대에서 모습을 보였는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 발레리나라는 말은 풍문의 부풀어 나감 속에 그저 풍문 같은 하나의 수식어에 지나지 않지 않을까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만인이 평등한 춤이란 예술의 지평에서.

▲ 14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강수진 &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까멜리아 레이디> 드레스리허설 1막 현장

춤은 언어를 초과하는 그 무엇이다. 지식을 토대로 한 이해의 영토 대신 존재와 존재의 마주함이자 삶의 영토에서 피어나는 무엇이다. 강수진의 무대는 가까워 오고 있으나 어쩌면 그 마지막이 처음도 채 겪지 못한 많은 사람들의 아쉬움 내지는 아쉬움으로 남을 어떤 시간이 동시에 지나가는 것만 같다. 춤은 너와 나의 구별 없는 평등함과 섞임의 영토를 지향하건만(같은 땅을 디디며) 비상과 도약으로 땅을 잊게 하는 무중력의 끊임없는 지향인 발레는 그 정점에서 정상의 기량을 발휘하는 강수진의 무대는 요원하기만 하다.
우리는 한 TV프로그램에서 무용에 관한 별 지식 없이 농담 따먹기만 하는 연예인들 대신 차라리 그녀의 언어 대신 그녀의 무대에 접근할 수 있는 어떤 하나의 기회와 마주했어야 하지 않을까.

오직 한 사람을 위한 무대라는 미학적 지점의 최상은 오직 그 공연을 경험할 수 있는 사람들만을 위한 무대로 바뀌고 있는 이 미세한 지점에서 쓴다.

[공연 개요]

 일 시 : 2012년 6월 16(토) ~ 17일(일) 5PM
 장 소 :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안 무 : 존 노이마이어(John Neumeier)
 음 악 : 쇼팽(chopin)
 원 작 : 소설 ‘춘희(The Lady of the Camellias)’ 알렉상드르 뒤마 저
 출 연 : 강수진, 마레인 라데메이커, 슈튜트가르트 발레단,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티켓 가격: VIP석 25만원 | R석 20만원 | S석 15만원 | A석 10만원 | B석 5만원
 문 의 : Club BALCONY 1577-5266  (www.clubbalcony.com)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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