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준 2012.05.04 08:00

▲ 지난 4월 17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 소재 두산아트센터에서 열린 연극 <카메라를 봐주시겠습니까?> 프레스콜 장면

처용설화의 처용은 당시 항해 교역을 하던 아랍계 상인의 인물을 그린 것이라 추측된다. 아랍 지역은 우리와 역사적인 연관을 살펴 볼 수 있는 부분이다. 반면 현재로서는 건설 등의 특정한 분야에서 경제·산업적 관계만이 유지되며 일반적인 관심의 바깥에 놓이게 되었다.

지난 4월 29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오른 ‘두산아트센터 기획연극 경계인 시리즈’의 네 번째 연극 <카메라를 봐주시겠습니까?>의 포럼이 지난 27일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열렸다.

▲ 지난 4월 27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 소재 두산아트센터에서 열린 연극 <카메라를 봐주시겠습니까?> 포럼에서, 사회를 맡은 주일우 문지문화원 사이 기획실장

경계는 가로지름(횡단)과 인접성을 토대로 한다. 이날 사회를 맡은 주일우(문지문화원 사이 기획실장)는 포럼을 여는 가운데 경계에 대한 예로, 자로 대고 그은 것 같아 보이는 서아시아의 인위적인 경계의 국경들이 현실 자체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경계’라는 개념은 모던modern의 시기에 통하는 구획과 분리의 층위에서 이야기되는 것임에 반해 실제적으로 이 모던과 그 이후의 시기는 지역에 따라 큰 편차를 보이고 있다는 것, 한 마디로 실제와 이상은 다르다는 것이다.

▲ 지난 4월 27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 소재 두산아트센터에서 열린 연극 <카메라를 봐주시겠습니까?> 포럼에서, 발제 중인 <카메라를 봐주시겠습니까?>의 대본을 번역한 국내 아랍 연극 전문가, 구미란

<카메라를 봐주시겠습니까?>의 대본을 번역한 국내 아랍 연극 전문가, 구미란은 좋은 것만 보고 들을 수 없듯이 시리아와 아랍을 아는 데 있어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고민을 같이 공유할 수 있다는 데 대해 긍정하며, 이들의 역사의 한 장을 넘기는 아픔을 겪는 가운데 유구한 역사에서 형성되어 온 자부심이 혁명으로 이어진다는 생각을 전했다.

‘시리아’라는 용어는 정확치는 않지만 그리스에서 먼저 나타났다는 기록이 있는데, 아랍어로는 수리야Sūriya로 불리며 다마스커스 주 지역의 이름으로 1865년 공식적으로 채택됐다. 이십세기 이후 시리아라는 국가 개념이 생겨난 것은 시리아가 아랍 문화권이라는 커다란 문화권에 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랍 문화권은 이슬람 종교가 받아들이기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이전은 무지의 시대로 불리며 당시 문화로는 문학이 주종을 이뤘다. 여기에는 자유로웠던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는 이성 간 사랑에 대한 적나라한 표현들이 많았다. 종교가 들어오면서 남성들로부터 여성을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히잡을 쓰는 관습이 자리 잡게 되었다.

무함마드 통치 시대, 정통 칼리프 시대, 우마이야 왕조 시대의 세 단계로 이슬람 종교가 지역적으로 확장해 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몽골제국의 침입 이후 군소 지역들로 갈리게 된다.

우위야마 시대는 아랍인들과 근본적으로 혈연관계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정권의 유지와 공통의 문화적 토대를 만들기 위해 시문학을 다시 부활시켰다.

중세 연애 서사시의 드라마적 암송, 종교 수난극(타으지야T'aziya:위로·위안), 그림자 놀이극, 인형극(까라고즈Quraqoz) 등이 존재해 왔고, 지금 현대 연극의 개념은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 이후에 소개됐지만, 현대연극을 첫 번째로 도입한 인물은 1847년 레바논 출신의 마룬 알-낙까쉬(Marün al-Naqqäsh)로, 몰리에르의 <수전노>를 아랍어로 각색해 공연으로 올린다. 이후 1870년 아흐마드 아부 칼릴 깝바니가 다마스커스에 극장을 세우고 연극 활동을 한다.

▲ 지난 4월 27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 소재 두산아트센터에서 열린 연극 <카메라를 봐주시겠습니까?> 포럼에서, 발제 중인 김재명 프레시안 국제분쟁 전문기자

두 번째 발표는 김재명 프레시안 국제분쟁 전문기자가 이었다. 중동은 주요한 세계 석유 매장량을 60퍼센트 정도를 차지하며 시리아 독재자 아사드는 시아 무슬림의 한 분파인 알라위 출신으로 그 종교가 다른데, 대다수 국민과 충돌하는 원인으로 작용하는 점이기도 하다.

김재명 기자가 두 번의 방문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시리아 곳곳에 근엄한 얼굴을 한 군부 세력의 초상들이 일상생활에 깊숙이 침투해 있다는 점이었다. 이는 체제 순응을 위한 시선의 지배 전략의 일환인 셈이다. “I Believe in Syria”라고 쓰인 전광판에서도 보이듯 폭력의 질서와 강압적 체제의 획득은 유순한 문화 회유 전략의 외피를 쓰고 있다.

시리아는 중동에서는 석유가 많이 나지 않는 편이다. R2P(Responsibility to Protect: 독재국가에서 심각한 인권침해가 이뤄지는 경우에 그 나라 주권을 일시적으로 보류하고 국제사회가 개입할 수 있다는 논리), 곧 국민을 보호해야 할 책임을 내세워 2011년 3월 통과된 유엔 안보리 결의안이 리비아와 같이 시리아에 통과되어 적용되지 않았던 것도 시리아의 세계 석유 비중으로 크지 않기 때문에 세계 경제 질서에 미미한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충분히 찾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한편 차안으로 놔두자는 심리도 여기에 깔려 있다. 이란의 ‘호메이니’ 정권이나 레바논의 이슬람 시아파 무장세력 ‘헤즈볼라’의 더 악화된 정권이 현 정권을 대신하는 것 대신에 아사드가 집권하는 게 차라리 낫다는 것이다.

연출을 맡은 오마르 아부 사다는 ‘변화를 원하는 것이야말로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지금의 혼란 상태를 제자리로 되돌리는 데 십년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전했다.
또한 혁명에 대해 시리아의 많은 야당·지식인들 세력이 침묵으로 일관했다, 혁명은 중산층의 혁명이었다고 전했다.

 

▲ 지난 4월 27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 소재 두산아트센터에서 열린 연극 <카메라를 봐주시겠습니까?> 포럼에서, 발제 중인 연극 <카메라를 봐주시겠습니까?>의 작가 모함매드 알 아타르

본 작품의 모함매드 알 아타르 작가는 ‘혁명이 현재의 상황보다 더 나쁘게 하지는 않을 것이고 우리는 앞을 향해 갈 것이다, 군사적 개입이 아닌 정치적 개입에는 긍정한다’고 전했다.

작가는 시리아 혁명 초기에는 극본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갖지 않았는데, 길거리에서 시위를 일으킨 청년들·국민들의 힘에 놀랐고, 가장 중요시하고 우려했던 바는 (연극 이전에) 혁명에 어떻게 가담할 수 있는지, 그리고 변화의 혁명의 시기에 지금의 시기를 연극에 써야 하는지, 그렇다면 연극이 독재 정권의 퇴진 운동에 기여할 수 있는지였다. 가령 이는 예술이 정치적 영역을 점하거나 속할 수 있는 것이 온당한가의 질문의 영역을 초래하는 것이다.

작품을 쓰면서부터는 쓴다면 어떤 것을 써야하는가, 계속 현실에 사건들이 발생하며 큰 변화가 이는 가운데, 여기서 어떤 시점에 주목해야 하는가, 그리고 문학 텍스트를 만드는 데는 다양한 방법으로 글을 쓸 수 있는 비유나 시간에 대해 묘사할 수 있는 방법들이 여럿 있는데 실제적인 혁명과 현실의 영향을 어떻게 담아낼 수 있는가 등 많은 질문이 따랐다. 여기에는 예술과 현실의 경계를 설정하고, 현실의 텍스트를 예술로 육화하는 미학적 문제가 담겨 있다.

우리의 현실 역시 완전히 무관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가령 정부의 미국 수입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대규모로 열린 국민들의 촛불 집회에 놀이와 축제의 판을 만들거나 예술을 수단으로 적용할 때 그 나이브한 예술은 기존의 예술과는 어떻게 다른가, 한 명의 국민으로서 집회에 참여하는 예술가는 예술가의 정체성으로 분리해 판단 가능한가 따위가 주는 예술과 삶의 경계를 횡단하는 현실의 징후들은 그 사태의 심각성의 단순 비교를 떠나 예술에 대한 사유를 재정비하게 한다.

▲ 지난 4월 27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 소재 두산아트센터에서 열린 연극 <카메라를 봐주시겠습니까?> 포럼에서, 발제 중인 연극 <카메라를 봐주시겠습니까?>의 작가 모함매드 알 아타르

한편 작가는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나고 있고 매일매일 있는 일을 (모두) 다 반영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우정과 증오 등 여러 이야기들이 도사리고 있어서 어떻게 그 이야기들을 담아낼 것인가의 질문을 잇게 됐다.

주변의 사람들이 체포된 경험을 갖고 있어 그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고, 수감된 자들의 이야기는 전달되고 모두에게 알려져야 한다는 게 소신이었다. 내면적인 고통과 수감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도 알려져야 하고, 수감을 탄압의 도구로 사용하는 정권의 문제도 파헤쳐져야 했다.

연극의 초안은 수감자들의 증언을 그대로 모아둔 것이었다. 말하지 못한 세부적인 이야기들이 더 있을 것이므로 이를 그대로 연극 텍스트로 차용하지는 않았다.

출소 이후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표현하고 싶었다. 이 힘든 상황을 어떻게 이겨내고 꿈을 꾸는지 또는 여전한 악몽을 꾸는지 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변화됐는지를 그려 내고 싶었다. (현재와 과거를 모두 담고 있는 새롭게 구성된) 연극의 텍스트를 통해 더 많은 것을 질문할 수 있었다. 사람들의 증언은 현재 시리아 상황과 매우 닮아 있(었)다. 실제 만났던 인물이 아니지만 실제 충분히 존재 가능한 인물들이(었)다.

주일우는 ‘우리나라 고문·투옥의 역사와 매우 닮아 있어 놀랐다, 상황이 바뀌는 가운데 계속 달라지는 대본들을 받아 보며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 낼까 호기심을 가지게 됐다’고 전했다.

▲ 지난 4월 27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 소재 두산아트센터에서 열린 연극 <카메라를 봐주시겠습니까?> 포럼에서, 발제 중인 연극 <카메라를 봐주시겠습니까?>의 연출 오마르 아부 사다

연출은 단 하나의 진리가 존재한다고 생각지 않았다. 자신의 주변에 있는 여러 생각들을 항상 장려하고 지지해 왔고, 이것이 실제 자신의 삶을 그리는 데 차이가 있어도 그것을 허용해 왔는데, 이번에는 여러 가지 리허설을 거쳐 오며 극본의 민감함으로 인해 토론을 하기도 했다.

여기서 도출된 수십 개의 질문들에 대답하지 못했고, 편안한 대답들만을 받아들이게 됐던 가운데, 극본을 통해 더 많은 자유와 용기를 얻고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보여줄 수 있게 됐다. 예술적인 방법으로 상영의 방법을 고안하게 됐고, 수감자들의 경험을 문서화·다큐멘터리화하는 방법을 생각했으며 그들의 수감 경험이 주요하게 극본을 차지하게 됐다.

▲ 지난 4월 17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 소재 두산아트센터에서 열린 연극 <카메라를 봐주시겠습니까?> 프레스콜 장면, 아마추어 영화감독 주인공 노라 역, 배우 난다 모함메드(Nanda Mohammad)

그들은 고통스런 체감 수기를 알려주었으나 그 전에 비해 삶에 대한 열망을 더 크게 갖게 됐다고 한다. 그들의 방식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었고, 사랑을 갖고 새로운 힘을 원하게 됐다. 인도적인 상황이나 이야기가 본질이라고 생각하게 됐고, 많은 증언들에 대한 감정이 여기 섞여 있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이런 감정을 표현 가능케 되었다. 이들의 삶을 온전히 드러내는 모험을 한다는 것은 “정치적인 모험”이기도 했다.

▲ 지난 4월 17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 소재 두산아트센터에서 열린 연극 <카메라를 봐주시겠습니까?> 프레스콜 장면

이들의 이야기를 전개하고 매개하는 과정에서 연출은 단원들과도 복잡한 관계를 형성하게 됐다. 결과적으로 <카메라를 봐주시겠습니까?>는 시리아의 역사적인 변화에 있는 한 세대들의 이야기다. 또한 최종적 결과물로서 연극을 상연하는 게 아니라 극본 자체의 문맥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즉 끊임없이 현실의 영향 아래, 자신들의 사유를 재조직하고 형성하는 과정 아래 재편되는 현실 관계적‧과정적 연극의 대본을 상정하며.

시리아의 현재 연극 작업들은 첫 번째 민족이나 국가에 관련된 공연으로, 정부가 연극을 체제를 확고히 하는 방식으로 이용하는 것이고, 동시대의 흐름에 많이 뒤쳐지며 예술성이 많이 떨어진다. 두 번째 동향으로 독립된 연극으로 독립예술가들이 제시하는 연극들이 있다. 이들은 그 수가 적어도 세계의 실험적이고 자유로운 형태의 상연을 지향하며 동시대 흐름을 반영하고자 한다.

시리아 혁명에는 노래·춤·벽화 등이 혁명의 과정에서 드러나고 있다. 이 부분이 작품에도 반영됐다(무대 뒤에 각종 문구가 새겨진 포스터들이 자리하고 있다). 또한 스마트폰 따위를 이용한 SNS(Social Networking Service)가 시위 현장을 전파하는 데 이용된다. 증언들을 바탕으로 한 본 연극에서도 수감 장소에서 증언자들을 매개하는 등장인물들을 통해 SNS의 하나인 페이스북을 검열 받았던 경험들이 드러나고 있다.

포럼이 관객으로 마이크를 향했을 때, 우리의 민주화 운동과의 비교적 관점에서 질문들이 따라 나왔다. 여기에는 두 가지 전제된 오류가 있다.

가령 몇 십 년 전 과거의 우리의 상황이라는 대입 아래 혁명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의식에 과거의 우리의 의식을 대입하는 것, 그리고 우리의 혁명의 현재 역시 현재는 종료된 것이라고 판단하고 만다는 것. 오히려 현재 진행형이고 그들 의식과 우리 의식은 공통분모를 이루고 있지 않은가. 가령 어떤 축제적인 측면이 시위 속에서 발현된다는 것, 매체를 이용한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주체로서 그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그러하다.

혁명이 무자비하게 탄압되며 인명 살상이 벌어지는 이들의 현실은 꽤나 심각하게 다가왔다. 한편 혁명에 예술이 삽입될 수 있다는 것, 단순한 강자와 약자의 수직적 관계가 탄압을 통해 일방적으로 실현되는 대신 주체적인 목소리가 현실을 전도하고 또 전유한다는 것의 가능성은 이 혁명이 지난 우리의 시절의 민주화 운동의 강경함의 기조와 처절한 사투, 가령 긍정과 즐거움이 틈입될 수 없었던, 또한 그것들을 지우는 방식으로 운동의 표면을 만들 수밖에 없었던 현실과의 어떤 차이의 징후가 엿보인다는 생각이 스쳐간다.

즉 우리의 지난 4년 전 촛불시위(이번에 미국에서의 광우병 발생으로 인해 전면 수입 거부를 촉구하는 시위가 또 다시 벌어지고 있다) 현장이나 최근 제주도 강정마을의 구럼비 바위 폭파를 강행한 정부의 움직임에 반대하는 일련의 사건까지 강정마을에 해군기지 건설기지가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는 운동을 벌인 다양한 예술가들의 활동, 한진중공업 파업사태 당시 크레인에 오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시위에 그녀를 응원하는 많은 사람들이 희망버스를 조직해 그녀가 있는 현장에 와서 싸움이 아닌 축제와 같은 현장을 만들었던 일련의 사례들은 몸으로 충분히 체감되는 부분이기도 한데, 이는 연대의 자리이자 현실의 자리를 선점하지 못하는 몫 없는 자들의 목소리가 출현하는 실제적인 자리를 만드는 것, 현실에 절망하는 대신 삶 자체를 긍정하는 자세 같은 부분이 묻어나는 뭔가 다른 움직임과 의식들이 엿보인다.

결과적으로 달라진 우리의 시위에서의 의식과 시리아의 사태에서 발생하는 의식들과 어떤 (우리 현실에서의) 연대의 가능성이, 그 이전에 공통의 감각이 공유되는 부분이 있다고 보이는 것은 과한 추측의 일부일까.

이 부분에 대한 더 면밀한 검토가 그들의 현실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번 포럼은 우리의 현실과 연결 짓지 못했다는 점에서 미완의 완성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연극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부터 연극이 표출하는 것까지, 그리고 이 포럼에서의 현실 발언 등이 많은 질문과 사유를 뒤따르게 한다.

▲ 지난 4월 27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 소재 두산아트센터에서 열린 연극 <카메라를 봐주시겠습니까?> 포럼에서, 두산 아트센터 기획연극 '경계인 시리즈' 김요안 PD

두산아트센터의 경계인 시리즈는 현실적으로 정치적 영역에까지 그 질문을 당도하게 하는 여파를 만들어 내지는 못한 가운데(못했다고 보이지만), 우리의 현실과 그들의 현실의 경계에서 사유하게 하는 최종의 질문에서 일단의 성과를 도출하는 듯 보인다.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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